[단독]“지르고 보자”… 타당성조사 탈락한 사업도 포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총선 D-6]‘묻지마 공약’ 남발
여야 지역개발공약 174조 폭탄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지역개발공약을 들여다보면 표를 얻기 위해 일단 ‘지르고 보자’는 여야의 무책임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당수의 공약들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데다 천문학적으로 소요될 재원 규모를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방안도 없다. 공약을 다 이행하려면 나라 곳간이 거덜 날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 ‘사업 불가’ 딱지를 받았어도…

양당이 쏟아낸 174조 원짜리 ‘공약 폭탄’에는 이미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사업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판정과 사업추진 불가 결정을 여러 차례 받은 것들도 포함돼 있다. 경제성이 없어도 일단 총선용 공약으로 내지른 셈이다.

새누리당이 내놓은 경북지역 광역교통망 건설사업이 대표적이다. 경북지역 좌우, 상하를 아우르는 ‘밭전(田)자’ 모양의 광역교통망을 건설하는 데에만 18조7792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막대한 사업비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미 두 차례나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했다.

현실성이 떨어져 검토조차 하지 못한 사업도 있다. 더민주당이 내놓은 ‘U자형’ 고속철도망 건설사업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구상이 됐지만 사업비 규모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부산∼강릉, 목포∼부산 고속철도망 건설비용은 노무현 정부 당시 추계로만 21조7000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단순한 구상 차원의 공약들도 많았다. “인천지역에 미래로 도약하는 편리한 교통체계를 구축하겠다”(새누리당)거나 “전북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조기 구축으로 새만금 3.0시대를 실현하겠다”(더민주당)는 공약은 어떤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실천계획 없이 ‘추진하겠다’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공약들도 눈에 띄었다.

우선순위 없이 나열식으로 지역개발공약을 발표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와 함께 양당 지역개발공약을 분석한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정치인데, 표심을 걱정한 나머지 어떤 지역의 개발공약을 먼저 추진할 것인지, 또 지역 내에서는 어떤 공약이 더 시급한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은 배제한 채 공약을 나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 ‘묻지 마 공약’에 증세할 판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들 지역개발공약을 앞다퉈 내놨지만 정작 이를 실현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방법은 빠져 있다.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선심성 ‘묻지 마’ 공약에 나라 곳간이 거덜 날 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국가부채가 1284조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SOC 개발공약은 재정 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이미 개발이 많이 돼 SOC 수요가 줄고 있고, 지방은 도로망이 과다한 상황”이라며 “이용하지도 않는 경전철이나 운동장을 짓느라 정작 필요한 사업은 뒤로 밀려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숙원사업이라는 이유로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무시하다 보니 지역 불균형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지방공항 유치나 KTX 정차역 신설 등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공약들이 대표적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가 모두 영남권 신공항 유치 공약을 내걸었다. 지역주민의 편의뿐 아니라 지역 간 균형을 고려해야 하지만 이런 고민은 빠져 있다. 이미 무안·양양·울진공항 등 지방공항들이 적자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해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황에서 또다시 정치권의 인심 쓰기에 예산 낭비와 사회적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공약 정찰제’로 현실성 높여야

후보자들이 무책임한 지역개발 공약을 앞다퉈 내놓는 것은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단 표만 얻고 보자는 속셈으로 쏟아낸 공약이다 보니 공약이 실제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 이행률은 터무니없이 낮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19대 총선 개발공약 106건 중 12%인 13건만 실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공약의 이행률을 높이고 무분별한 ‘공약 폭탄’을 막기 위해선 공약을 제시할 때 사업비 규모와 재원 확보 방안을 의무적으로 밝히는 ‘공약 정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공약을 발표할 때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어떤 분야에 얼마를 쓰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같이 밝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선거 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공약을 발표해 검증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선거가 진정한 정책 대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신민기 minki@donga.com·이상훈 기자
#공약#타당성#선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