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 달라진 ‘SNS 생태계’]열린 디지털 공론장 ‘옛말’… ‘끼리끼리’ 반쪽 공간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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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성향 다른쪽 정보 무시… 정책-공약보다 이미지에 좌우
미모의 후보 자녀 사진에 열광도

총선을 앞둔 대학생 천모 씨(25)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는 파란색과 초록색 글뿐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때만 해도 천 씨의 SNS에 뜨는 글들은 빨간색, 노란색이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글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 서평 등에 모조리 ‘해당 게시물 숨기기’나 ‘팔로 취소’를 해왔다. 4년이 지난 지금 천 씨는 SNS에서 특정 성향의 글만 보고 있다. 천 씨는 “솔직히 지역구의 여당 후보자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른다. 거부감이 덜하고 성향과 맞는 글들을 보다 보니 야당 후보자들 관련 글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SNS의 ‘디지털 공론장’ 역할이 2012년 총선과 비교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년 동안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토론장 이용자에 비해 SNS 이용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정작 SNS 이용자들은 특정 성향의 선택적 정보에만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가 한국 사회에 안착되면서 공론장에서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 끼리끼리 모이는 ‘확증편향(確證偏向·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수용하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것)의 확대 재생산’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4년 전 SNS가 갓 등장했을 땐 초기의 신선함에 매료된 이용자들이 자신의 성향에 관계없이 서로 팔로잉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신과 소통하기 편한 사람들로 네트워크가 한정됐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SNS 등장 초기에는 다양한 정치인들에게 링크 되고 팔로 되는 걸 신기하게 여겼다”며 “지금은 취향에 맞는 사람의 글들에만 관심을 가지는 쪽으로 취사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SNS 생태계 또한 최근 급격히 개인화됐다. 예컨대 인스타그램은 자신이 팔로한 사람 외의 글을 볼 수 없다. 테러방지법으로 사용자가 급격히 늘어난 ‘텔레그램’은 끼리끼리 소통하고 헤쳐모이는 방식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정당의 후보자에 대한 ‘찌라시’(사설 정보지)를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방을 만들어 공유한 후 증거가 남지 않도록 폭파한다. 전 교수는 “SNS에서는 본인의 생각이 진짜인 것처럼 보여야 이용자들이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 문제”라며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네트워크에서 제외하는 기능도 잘 갖춰져 있어 공론장으로서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생 권모 씨(27)는 “SNS에서는 후보자의 공약보다는 친한 팔로어와 이야기하며 형성한 정당의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며 “선호하는 정당이 비슷한 친구끼리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지역구 후보 투표뿐만 아니라 정당 투표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거철에는 SNS에서 편향적, 선택적 정보를 받아들여 공약보다는 이미지에 따라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젊은 유권자들이 전통적 매체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해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인 결정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SNS에서 자녀나 조카의 외모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유승민 후보(대구 동을)의 딸,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후보(서울 마포을)의 조카, 김부겸 더민주당 후보(대구 수성갑)의 딸 사진이 SNS에서 수만 건 공유됐다. 후보들이 SNS에 올린 공약 글에 ‘좋아요’가 1000건도 안 된다는 점과 비교하면 씁쓸한 현상이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디지털#공론장.정치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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