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중국 압박이 러브콜이면 북핵은 러브레터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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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한중관계 역대 최상”… 외교장관 주미대사 자화자찬에
대통령도 홀딱 넘어간 듯
“한일관계 경색, 미국 국익 위협”… “중국, 한미동맹 버려라 압박”
美의회 보고서 알고도 숨기는가
자유민주적 통일 원한다면… 돈에 눈멀어 안보 희생 안 된다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미중(美中) 양측에서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말에 굳이 도끼눈을 뜰 필요는 없었다. 강대국 사이에 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활용할 외교역량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난주 윤 장관이 이 말을 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에서 우리가 강대국 사이에 끼었다며 ‘아이코 큰일 났네’ 하는데 너무 그럴 필요 없다”고 한 것은 곰곰 뜯어볼 필요가 있다. ‘낀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이를 활용할 역량이 없다면, 심지어 역량이 없는 것조차 모른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요즘 비판적 글을 쓴 사람 치고 청와대에서 질책성 전화를 안 받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배치와 관련해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을 비판한 외교연구원의 한 교수는 사실상 문책 처분을 받았다. 물론 이들 기관은 외교부 압력을 받았다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미관계 한중관계를 역대 최상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윤 장관이 이런 고언을 ‘고뇌 없는 무책임한 비판’으로만 여기는 건 문제가 있다.

미국과 중국의 공관에서 “우리가 최고”라는 보고만 들어올지 모른다. 안호영 주미대사도 열흘 전 간담회에서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도 한미관계가 어느 때보다도 좋다는 게 워싱턴의 일반적 정서”라고 했다.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어 ‘리틀 차이나’라고 불린다는 기자들의 얘기엔 답답하다는 듯 “중국 경사론(傾斜論)의 근거를 좀 가져와 달라”고까지 했다.

“한일관계 경색이 대북정책을 비롯한 아시아 역내 문제의 한미일 협력을 복잡하게 만들어 미국의 국익을 위협한다”는 CRS의 1월 미일관계 보고서를 안 대사가 못 봤다면 유감이다. 미 의회 소속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의 2014년 보고서에서 “서울의 한국정부 관리들에 따르면, 중국은 밀착된 한중관계의 레버리지를 이용해 한미동맹을 버리도록 한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한 걸 주미대사가 모르면 직무태만이고, 알고도 숨겼다면 공직자 윤리가 의심스럽다.

중국이 한국의 주권을 간섭한 건 사드만이 아니었다. “시진핑 주석은 한국정부에 자국 통신업체인 화웨이가 한국 통신 인프라망 입찰을 따내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미국 온라인 정치·군사전문 매체 워싱턴 프리비컨의 지난달 보도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중국은 물론이고 어쩌면 북한도 우리의 통신 내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도 있게 된다는 얘기다. “중국에 정통한 미국 관리에 따르면, 중국은 반일(反日)감정에 불붙여 한국이 중국과 북한의 긴급한 위협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데도 한국의 리더십이 여기 쉽게 빠져드는 듯하다”는 대목에선, 아이코 박근혜 외교 큰일 났네 소리가 절로 나올 판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미동맹에 대해 박 대통령이 허위과장 보고를 받고 있었다면, 이제라도 실상을 파악해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인사와 정책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반대로 해온 박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친중(親中)정책을 펴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CRS 리포트는 1월 “중국이 북한의 해커와 핵무기 프로그램 지원 등 김정은 정권의 안보와 생존을 돕는 쪽으로 방향 전환했다”고 밝혔다. 미국외교협회는 2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신안보구상이 한미동맹을 배제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한국이 이미종중(離美從中·미국을 떠나 중국을 따른다)인 데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버지가 만주군 중위로 일본에 협력한 유산 때문에 박 대통령 휘하에서 한중관계가 밀월기에 진입했다”고 썼다.

시진핑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박 대통령은 ‘역사적 아버지’를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리더 모두 70년 전의 3중 파고 못지않은 격랑 속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백척간두에 서 있다. 만일 박 대통령이 아버지로 인해 죽어도 ‘친일파’ 소리는 들을 수 없기에, 미워도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공유한 일본 그리고 미국 대신 중국 편에 선 것이라면 국민 앞에 설명하기 바란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당장의 위정자에겐 실용적 노선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통일을 원하는지 따져보면 답은 분명하다. 절체절명의 순간, 돈 때문에 안보를 희생시킬 순 없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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