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개입-증거조작에도 버틴 南원장 ‘세월호’는 못피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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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내각 개편/김장수-남재준 경질]
외교안보라인 투톱 교체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장관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이 이야기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장관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이 이야기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2일 정부 안팎에서는 ‘안대희 전 대법관의 국무총리 내정’보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전격 교체’를 더욱 충격적인 뉴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사표 수리’라는 표현을 썼지만 ‘경질 인사’에 힘이 더 실린다. 김 실장과 남 원장은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주축이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교체와 후임자 임명은 박근혜 정부의 향후 대북정책 기류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김장수의 예고된 퇴진, 남재준의 예상 밖 교체

김 실장의 경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책임 회피성 발언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도 김 실장의 발언을 문제 삼아 정부 책임론을 강력 제기하면서 김 실장의 교체 여론이 크게 확산됐다. 정부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대형 재난에 대한 정부의 무한책임과 ‘국가 대개조’를 공언한 박 대통령으로선 물의를 빚은 김 실장을 유임시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 내부에서는 ‘남 원장의 퇴진은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 많다. 남 원장은 누구보다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만큼 조각(組閣) 수준의 개각이 이뤄지더라도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실제로 남 원장은 현 정부의 처음과 끝을 함께할 ‘순장조(殉葬組)의 핵심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박 대통령도 그동안 야권의 집요한 공세에 맞서 남 원장이 주도하는 국정원 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등 적극 엄호해왔다. 한 안보 전문가는 “김대중 정부의 임동원, 노무현 정부의 이종석 통일부 장관처럼 정권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이 있는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남 원장이 그런 인물로 인식돼 왔다”고 말했다.

○ ‘쇄신 태풍 몰아치나’ 바짝 엎드린 국정원

남 원장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탈북 위장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파문 등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고 흔들리다가 이번 세월호 참사로 마지막 결정타를 맞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반된 민심 수습을 위한 정부 쇄신과 이를 통한 선거 정국의 돌파를 위해서는 남 원장의 교체도 불가피하다고 박 대통령이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달 15일 서천호 2차장의 퇴진으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던 국정원 쇄신 작업은 후임 원장이 임명되면 다시 불씨가 살아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여부와 대공수사 파트의 협조자 관리 등 개혁 차원에서 대대적인 변모를 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음 주에 발표될 후임 국정원장에는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이병기 주일본 대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영세 주중국 대사 얘기도 나온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6·4지방선거를 불과 12일 앞두고 국정원장을 교체한 것을 의외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정원을 잘 아는 인사는 “부하 직원에게 무한신뢰를 보여주는 남 원장의 리더십 때문에 따르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

이번 기회에 군과 관료 중심의 외교안보 라인 구성에도 어떤 식으로도 충격요법이 더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실장과 남 원장이 물러나면서 박근혜 정부의 안보 요직을 독점했던 ‘육사 전성시대’도 사실상 막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관계자들은 김 실장과 남 원장의 경질 사유가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의 실패는 아니지만 대북 강공 드라이브를 주도한다고 평가돼 온 두 사람의 교체가 대북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정부의 한 인사는 “신임 국가안보실장은 군 인사를 다시 기용하기보다 복잡해진 동북아 외교 안보 환경과 대북 통일정책을 전략적 사고로 이끌 인물을 등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이 기회에 군인과 관료 위주의 외교안보 라인 구성에서 벗어나 통일외교 정책을 전략적으로 이끌 전문가를 대폭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큰 틀은 유지하되 북한 및 한반도 현실을 감안한 탄력적인 대북정책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두 사람의 교체를 긴장 조성 위주의 대북정책에서 탈피해 북한을 관리하면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고 핵 포기를 유도하는 적극적 관여(engagement) 정책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대북정책은 박 대통령이 ‘오너십’을 갖고 주도해온 만큼 두 사람의 교체가 큰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앞으로도 대북정책의 큰 방향이나 그림은 박 대통령이 그리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그 정책의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정도로 작동하는 구조가 계속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장수#남재준#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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