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 이용 ‘증거조작’ 자백 압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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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국정원 金과장이 요구한 협조자 金씨와의 대질 불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체포된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모 과장은 국정원 협조자 김모 씨(61)와의 대질신문을 검찰에 여러 차례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17일까지도 두 사람이 마주 앉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두 사람의 진술을 입증하기 위해선 격리 조사를 통해 자백을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 김 과장 “김 씨가 입수해주겠다” 제안

위조로 드러난 싼허(三合)변방검사참의 문건 입수를 누가 제안했는지부터 양측의 진술이 엇갈린다. 김 씨는 “김 과장이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 씨(34) 변호인 측 주장을 반박할 자료를 구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애초에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김 씨에게 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어렵다’고 거절했다”면서 “나중에 김 씨가 한 인터넷 언론에 뜬 변호인 측의 ‘싼허검사참의 정황설명서’에 대한 기사를 보고 먼저 전화해서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이 문건 위조를 알고 있었는지는 국정원 측의 범행이 성립되는지를 결정할 핵심 쟁점이기 때문에 더욱 진술의 차이가 크다. 김 씨는 검찰에서 “김 과장도 문건이 위조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도장을 파오라고 했다” “답변서를 받기 위한 신고서를 싼허검사참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는 등 여러 진술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과장은 “김 씨가 나도 모르는 얘기를 검찰에서 많이 했다”면서 “김 씨가 ‘내 신분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신고서엔 공장 직원 두 명의 이름을 적었다’면서 진짜 문건을 입수할 것처럼 얘기해 속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김 씨가 입수한 싼허검사참 신고서와 답변서를 토대로 ‘가짜 확인서’를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인철 영사도 “협조자의 확인이 있으면 영사가 확인한 것으로 쓰는 관례에 따라 확인서를 썼을 뿐이며 이렇게 작성한 문건은 이외에도 여러 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검찰, ‘죄수의 딜레마’ 이용?

검찰은 일단 두 사람에게 모두 위조사문서 행사죄와 수사·재판을 받는 사람을 모해할 목적으로 증거를 위조했을 때 적용되는 모해증거인멸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두 사람을 문건 위조의 공범으로 본 것이다. 형량은 위조사문서 행사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모해증거인멸죄는 징역 10년 이하로 훨씬 무겁다.

김 씨의 진술이 두 사람의 혐의를 입증할 주요 증거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김 과장과 김 씨가 의사교환을 통해 모두 범행을 부인한다면 형량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무죄까지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격리된 상태로 상대방이 무슨 진술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자백해야 선처해 준다”는 검사의 설득이 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변호사는 “중국 국적인 김 씨가 문건을 위조해 왔고 이 문건이 한국에서 사용됐다는 위조사문서 행사죄(한국 법정에 제출)가 성립하려면 한국인인 김 과장이 공범이 돼야 처벌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양자의 처벌이 연동돼 있다는 점에서 ‘죄수의 딜레마’가 적용될 여지가 큰 것이다.

검찰은 구속영장에 적시된 혐의 외에도 7년 이상 징역 혹은 무기징역 사형까지 가능한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혐의 등의 적용을 놓고 최종 기소할 때까지 수사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 죄수의 딜레마 ::

함께 범죄를 저지른 두 공범자를 격리해 조사할 때 둘 다 범죄사실을 부인하면 형량이 낮아지거나 무죄를 받지만 한 사람은 끝까지 자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자백하면 선처해주겠다’는 유혹에 빠져 자백할 경우 자백하지 않은 쪽이 굉장히 무거운 형을 받게 된다. 따라서 상대가 자백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자백을 할지 말지 딜레마에 빠진다는 이론.

최우열 dnsp@donga.com·장관석 기자
#죄수의 딜레마#증거조작#검찰#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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