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체포된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모 과장은 국정원 협조자 김모 씨(61)와의 대질신문을 검찰에 여러 차례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17일까지도 두 사람이 마주 앉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두 사람의 진술을 입증하기 위해선 격리 조사를 통해 자백을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 김 과장 “김 씨가 입수해주겠다” 제안
위조로 드러난 싼허(三合)변방검사참의 문건 입수를 누가 제안했는지부터 양측의 진술이 엇갈린다. 김 씨는 “김 과장이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 씨(34) 변호인 측 주장을 반박할 자료를 구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애초에 유 씨의 출입경기록을 김 씨에게 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어렵다’고 거절했다”면서 “나중에 김 씨가 한 인터넷 언론에 뜬 변호인 측의 ‘싼허검사참의 정황설명서’에 대한 기사를 보고 먼저 전화해서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이 문건 위조를 알고 있었는지는 국정원 측의 범행이 성립되는지를 결정할 핵심 쟁점이기 때문에 더욱 진술의 차이가 크다. 김 씨는 검찰에서 “김 과장도 문건이 위조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도장을 파오라고 했다” “답변서를 받기 위한 신고서를 싼허검사참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는 등 여러 진술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과장은 “김 씨가 나도 모르는 얘기를 검찰에서 많이 했다”면서 “김 씨가 ‘내 신분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신고서엔 공장 직원 두 명의 이름을 적었다’면서 진짜 문건을 입수할 것처럼 얘기해 속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김 씨가 입수한 싼허검사참 신고서와 답변서를 토대로 ‘가짜 확인서’를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인철 영사도 “협조자의 확인이 있으면 영사가 확인한 것으로 쓰는 관례에 따라 확인서를 썼을 뿐이며 이렇게 작성한 문건은 이외에도 여러 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검찰, ‘죄수의 딜레마’ 이용?
검찰은 일단 두 사람에게 모두 위조사문서 행사죄와 수사·재판을 받는 사람을 모해할 목적으로 증거를 위조했을 때 적용되는 모해증거인멸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두 사람을 문건 위조의 공범으로 본 것이다. 형량은 위조사문서 행사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모해증거인멸죄는 징역 10년 이하로 훨씬 무겁다.
김 씨의 진술이 두 사람의 혐의를 입증할 주요 증거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김 과장과 김 씨가 의사교환을 통해 모두 범행을 부인한다면 형량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무죄까지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격리된 상태로 상대방이 무슨 진술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자백해야 선처해 준다”는 검사의 설득이 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변호사는 “중국 국적인 김 씨가 문건을 위조해 왔고 이 문건이 한국에서 사용됐다는 위조사문서 행사죄(한국 법정에 제출)가 성립하려면 한국인인 김 과장이 공범이 돼야 처벌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양자의 처벌이 연동돼 있다는 점에서 ‘죄수의 딜레마’가 적용될 여지가 큰 것이다.
검찰은 구속영장에 적시된 혐의 외에도 7년 이상 징역 혹은 무기징역 사형까지 가능한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혐의 등의 적용을 놓고 최종 기소할 때까지 수사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 죄수의 딜레마 ::
함께 범죄를 저지른 두 공범자를 격리해 조사할 때 둘 다 범죄사실을 부인하면 형량이 낮아지거나 무죄를
받지만 한 사람은 끝까지 자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자백하면 선처해주겠다’는 유혹에 빠져 자백할 경우 자백하지 않은 쪽이 굉장히
무거운 형을 받게 된다. 따라서 상대가 자백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자백을 할지 말지 딜레마에 빠진다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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