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北-中 출입경 증거 위조’ 논란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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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정보 수집 ‘비밀 루트’에 관심… 中, 절차적 하자를 ‘위조’라 했을수도

간첩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공무원 유모 씨(34) 공판 과정에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유 씨의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은 국가정보원이 입수한 것이다. 위조 논란이 불거지자 검찰과 국정원 사이에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정원은 “결단코 위조된 자료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반면에 검찰은 “현 단계에서 위조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약간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 ‘출입경 기록’ 국정원이 입수

이 사건에서 등장하는 유 씨의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은 모두 4가지다. △내사 단계에서 확보한 첩보 기록 △지난해 9월 확보한 관인 없는 출입경 기록 △허룽(和龍) 시 공안국 관인이 찍힌 기록 △허룽 시 공안국 관인과 공증처 관인까지 찍힌 기록 등이다. 이 중 검찰이 독자적으로 확보한 것은 없다. 검찰은 1심 공판 때인 지난해 6월 선양 한국영사관을 통해 출입경 기록 발급을 공식 요청했지만 지린(吉林) 성 공안청으로부터 ‘전례가 없어 발급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공소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검찰은 지난해 9월 국정원으로부터 발급 관청의 관인이 없는 출입경 기록을 건네받았다. 이 기록은 변호인 측이 확보한 기록과 내용이 같다. 유 씨가 2006년 5월 27일(오전 11시 16분)과 6월 10일에 입경(入境), 즉 북한에서 중국으로 입국한 것으로만 기재돼 있다. 북한으로 들어간 기록은 없고 중국으로 나온 기록만 있는 셈이다. 변호인 측은 그동안 이를 전산 오류라고 주장해왔다.

이후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허룽 시 공안국과 공증처의 도장이 찍힌 문건에는 5월 27일 오전 11시 16분 출경(出境), 즉 중국에서 북한으로 나갔다는 것으로 뒤바뀌어 있다. 이 기록대로라면 유 씨가 5월 27일 북한으로 가 보위부의 지령을 받고 6월 10일 중국으로 돌아왔다는 혐의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자료가 된다. 이 출입경 기록 역시 국정원이 입수해 온 것이다. 검찰은 “이 문서를 재검증하기 위해 선양 한국영사관을 통해 기록발급 확인서를 받는 등 모든 절차를 마쳤다”고 밝히고 있다.

○ 국정원 입수 경위에 관심 쏠려

중국 측이 출입경 기록에 대해 ‘위조된 것’이라고 밝히면서 검찰과 국정원은 증거조작 의혹에 휩싸이는 상황이 됐다. 검찰은 당초 신중한 대응을 검토하다가 이번 사안이 국가기관의 신뢰가 걸린 문제라고 판단하고 이례적으로 중국 측과 주고받은 문서를 공개하는 등 정면 대응에 나섰다.

검찰 내부에서는 중국대사관의 회신문에 등장한 ‘위조’라는 표현이 문서 내용이 위조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발급 권한이 없는 관청에서 발급됐거나 상급자(기관)의 결재 없이 발급된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은 것으로 보고 있다.

변호인 측에 기록을 발급한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공안청과 국정원에 기록을 발급한 허룽 시 공안국 등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에 벌어진 의사소통 문제일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이 대북 정보 수집을 위해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북한 국적의 탈북자가 아닌 중국 국적자인 유 씨 사건이 불거지자 정식 사법공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국민의 신변과 관련된 정보를 구해 한국 법원에 제출한 데 대해 중국 정부가 ‘경고’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검찰은 의혹 불식과 공소 유지를 위해 이 기록들이 어떤 절차를 밟아 확보됐는지 명확하게 규명하고 싶어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국정원이 출입경 기록을 입수한 경위를 밝혀야 하는데, 국정원으로서는 중국 내 정보 수집 루트가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로 협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검찰은 중국 정부가 기록의 진위를 문제 삼은 만큼 국익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명쾌히 밝히지 못하면 항소심에서도 공소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 1심에서도 증거 진위 논란

이 사건에서 증거 진위 논란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심 공판 과정에서 검찰은 유 씨가 2012년 1월 22일 북한에 밀입북해 1월 24일 중국으로 돌아왔다며 유 씨가 고향인 북한 회령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록상 해당 날짜 사진의 촬영 장소는 북한이 아닌 중국 옌지로 밝혀졌다. 이런 혼선은 결국 1심에서 유 씨가 무죄 선고를 받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서울시#공무원 간첩#국정원 정보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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