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특사 방중… 韓美中 삼각공조 흔들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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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최측근 최룡해, 왕자루이 만나
6월 美-中, 韓-中 정상회담 앞두고 소원해진 北-中관계 복원 나선 듯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사진)이 22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정권을 물려받은 이후 자신의 첫 특사로 군부 최측근 인사를 중국에 보낸 것이다. 이달 7일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6월 미중,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다. 북한의 이번 특사 파견이 긴장 국면의 한반도 정세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날 오전 특별기편으로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특사단은 국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났다고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최룡해의 직함을 노동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라고 했다. ‘중국 공산당 대(對) 북한 노동당’의 교류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최룡해는 군복을 입고 중국에 입국했으며 왕자루이 부장을 만날 때도 군복 차림이었다”며 “이번 방중을 한반도의 안보 정세 등과 연관지으려는 의도로 읽힌다”고 말했다.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일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할 때도 군복 차림이었다.

특히 특사단에 이영길 총참모부 작전국장과 김수길 중장 등 군부 인사도 포함된 것으로 미뤄 군 관련 의제가 주요하게 다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7월 27일 6·25전쟁 휴전일(북한은 전승기념절로 기념) 6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하는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시종일관 6자회담을 추진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촉진해 동북아의 장기적인 안정을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최룡해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6자회담 복귀를 강력히 설득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양국의 관영 매체들이 특사단의 일정이나 목적을 보도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북-중 간에 깊이 있는 사전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 韓美中 연쇄 정상회담에 대응… 고립된 北의 ‘출구전략’ ▼

북한이 6월 7일 미중 정상회담, 같은 달 중하순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선제적 외교 행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최명해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아직 중국을 방문할 여건이 아니어서 북한이 정상급 대화채널에 버금가는 인물을 내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중국에 머무는 동안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할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이 성사될지가 1차 관심 대상이다.

최룡해는 김정은 집권 이후 진행된 북-중 인사교류 가운데 최고위 군부 인사다. ‘김정은의 특사’라는 공식 타이틀도 부여받았다.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도 지난해 8월 중국을 방문했지만 특사 자격은 부여되지 않았다. 그는 ‘조(북)중 공동지도위원회 대표단’ 단장 자격이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장성택이나 김양건 노동당 비서는 ‘돈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지 정상급 외교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북한, 일본과 교섭 시작 후 중국으로 확대

북한 전체 대외무역액의 90%(한국 제외)가 중국을 통해 이뤄진다. 생명선인 원유는 거의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한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에 흥미를 잃은 상황에서 북한이 기댈 곳은 중국밖에 없다. 이달 중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특사인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특명 담당 내각관방 참여(총리자문역)가 전격 방북했지만 북한이 일본을 통해 현재의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그동안 중국의 경고에 귀를 닫고 있던 북한이 특사 방문을 계기로 대외 기조에 변화를 줄 것이냐는 점이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시진핑-리커창(李克强) 체제 출범 직후 리젠궈(李建國) 전국인대 부위원장을 북한에 보내 도발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 3차 핵실험을 예정대로 단행했고 이후 중국은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시 주석), “한반도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돌로 제 발등을 찍는 것이다”(리 총리) 등 최고 지도자가 사실상 북한을 공개 비판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적극 이행 지시 △통관 절차 대폭 강화 △조선무역은행에 대한 미국의 단독 제재에 참가 등으로 대북 압박 수위를 이례적으로 높여 왔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국제 고립이 가중되는 북한으로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더는 악화되도록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중국, 북한과의 논의 결과 토대로 한미와 협의

이번 특사 파견이 북한의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북-중 양국의 대화 분위기를 진단하는 한 요소가 된다. 그동안 북-중 양국은 누가 먼저 특사를 파견할 것인지를 두고 기 싸움을 벌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북한의 이번 특사 파견은 태도 변화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시 주석이 북-중 논의 결과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고 이를 다시 한미, 한중 양국이 논의하는 식의 선순환 협의가 이어질 수 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최룡해의 방중을 계기로 한반도가 사실상의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라며 “북-중, 미-중, 한중 간 양자 논의가 사실상 4자의 형식으로 맞물리게 되는 만큼 향후 남북미중의 4자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비롯한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한다면 한국의 대북 지렛대는 그만큼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정부는 22일 북한에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통해 양국 간 수교를 도모하자는 내용의 담화까지 발표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은 제2차 북-일 정상회담(2004년) 9주년인 이날 담화에서 “북한이 납치 피해자 전원의 귀환을 실현하고 북-일 관계 재구축을 향한 역사적 대국적 견지의 올바른 결단을 내릴 것을 강력히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숭호 기자·베이징=이헌진·도쿄=배극인 특파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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