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검증] 노태우 前대통령, 1990년 최태민 내사 지시,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최태민과 육영재단 잡음은?

최태민과 함께 선 박근혜 1977년 3월 16일 대한구국봉사단이 세운 경로병원 개원식에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오른쪽)와 구국봉사단 총재인 최태민 씨가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동아일보DB
최태민과 함께 선 박근혜 1977년 3월 16일 대한구국봉사단이 세운 경로병원 개원식에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오른쪽)와 구국봉사단 총재인 최태민 씨가 참석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동아일보DB
《 5년의 ‘퍼스트레이디’ 생활과 15년의 정치활동을 통해 어느 정치인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하지만 사생활과 과거 행적 중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가족과 정수장학회 문제도 박 후보의 골칫거리. 동아일보는 24일부터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 대한 검증리포트를 세 차례 연재한다. 각종 의혹과 궁금증, 도덕성과 국정운영능력 등을 짚어 본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올 6월경 동생 근령 씨에게 먼저 전화를 건 것으로 전해졌다. 근령 씨와의 불편한 관계를 풀고 가자는 한 친박 원로의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화는 순조롭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 간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후보와 동생들 간 불화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0년 8월. 근령 씨와 남동생 지만 씨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주요 내용은 ‘최태민을 엄벌해 최 씨에게 포위당한 언니(박 후보)를 구출해 달라’는 것. 노 대통령은 청와대 하명사건을 담당하는 이른바 ‘사직동팀’에 최 씨에 대한 내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때마다 제기되는 ‘최태민 의혹’

현재 시중에 돌고 있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에 따르면 최 씨의 혐의는 횡령 사기 변호사법 위반 등 모두 44건에 이른다. 최 씨의 여성 관계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보고서는 1912년생인 최 씨의 나이가 76세로 기록돼 있어 198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성기관도 분명치 않다. 박 후보 측은 이 보고서가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 측도 박 후보와 최 씨가 상당히 밀접한 사이였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최 씨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5년 5월 11일이다. 그는 신도 5000여 명을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모아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 후보는 최 씨가 총재로 있는 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후 박 후보는 1주일에 많을 때는 2, 3차례 최 씨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박 후보가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1988년과 89년 각각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와 근화봉사단을 조직할 때도 최 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해서는 최 씨의 사위인 정윤회 씨를 핵심 참모로 기용했다. 정 씨는 2004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을 때까지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최근 본보 취재진이 2007년 한나라랑 대선후보 경선 당시 최 씨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인사들을 접촉한 결과 이들 대부분은 “최 씨와 관련해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많지만 아직은 공개할 때가 아니다”는 태도를 보였다. 최 씨의 의붓아들인 조모 씨가 최 씨의 비리를 폭로한 녹취록 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 씨는 박 후보가 영남학원 이사장 시절 학원 운영에 깊이 관여했지만 박 후보는 2007년 검증 청문회에서 조 씨를 모른다고 했다. 조 씨는 2007년 대선 직후 지병으로 숨졌다.

박 후보는 검증 청문회 때 “최 씨에 대한 의혹의 실체가 없다. 최 씨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아버지 시대나 이후 정권에서 법적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와 최 씨의 관계를 문제 삼는 이들은 최 씨가 박 후보의 후광을 업고 축재를 일삼았다고 지적한다. 최 씨의 자녀들이 20, 30대에 수백억 원대의 재산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 씨의 다섯째 딸로 정윤회 씨의 부인은 서울 강남구에 시가 120억 원 상당의 7층짜리 M건물과 강원 평창군에 23만431m² 규모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M건물의 땅값은 평당 6000만 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데오 거리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 신사동에서는 그나마 싼 편에 속한다고 한다. M건물 5층에는 정 씨의 사무실도 있다고 건물 관계자는 전했다. 평창 땅은 알펜시아 리조트와는 거리가 있어 평당 2만, 3만 원 수준이었다. 이곳은 외진 데다 가구도 거의 없었다.

○ 육영재단 갈등은 ‘현재진행형’

박 후보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근령 씨에게 물려줬다. 그해 10월 근령 씨를 지지하는 모임의 회원들이 육영재단으로 몰려와 박 후보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소란이 빚어진 뒤였다. 2007년 11월에는 회계부정 등을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이사장직 해임 처분을 받은 근령 씨가 육영재단을 떠나지 않자 지만 씨 측 인사인 정모 씨 등이 근령 씨를 육영재단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근령 씨의 남편인 신동욱 씨는 이를 ‘육영재단 강탈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배후로 지만 씨를 지목했다가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됐다. 법원은 정 씨가 이 사건을 모의할 당시 “회장님(지만 씨를 지칭)의 뜻”이라고 말했고 지만 씨가 이 사건에 관여한 이들에게 3억여 원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쓰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허위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정 씨는 이 사건 이후 어린이회관 관장에 올랐다가 2009년 7월 근령 씨에 대한 공동상해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관장직에서 사임한 뒤 다시 지만 씨의 회사인 EG의 기획실장 겸 비서실장으로 복귀했다.

이때 의문의 살인사건도 발생한다. 같은 해 9월 6일 ‘육영재단 사건’에 깊이 개입한 지만 씨의 5촌 조카 박용철 씨가 피살됐다. 살해 용의자는 역시 지만 씨의 5촌 조카인 박용수 씨였다. 용수 씨는 용철 씨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경찰은 애초 두 사람 사이에 채무관계가 있었다고 밝혔다가 계좌 추적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개인적 원한으로 살해 동기를 바꿨다.

[채널A 영상] 되풀이되는 ‘정수장학회’ 논란, 진실은…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검증팀

▽정치부=김기현 이재명 동정민 홍수영 최우열 기자
▽사회부=윤희각 전지성 박승헌 박희창 김태웅 기자
▽경제부=송충현 기자
#박근혜#최태민#육영재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