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있는 해의 추석 민심은 특별하다. 연말 대선 판세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른바 ‘추석의 정치학’이다. 올 추석 민심이 어디로 갈지에 정치권의 눈이 쏠려 있는 이유다.
2002년 추석 무렵. 당시 대선구도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 무소속 정몽준 의원의 3파전이었다. 그해 9월 7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정 의원은 29.5%의 지지율로 노 후보(17.8%)를 앞서고 있었다. 이 후보는 30.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월드컵 효과’로 지지율이 치솟은 정 의원은 추석 연휴(9월 20∼22일) 직전인 17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추석밥상 앞에선 당연히 ‘정몽준 출마’가 화제였다. 추석 연휴가 끝난 뒤인 10월 8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선 정 의원 27.1%, 노 후보 14.7%로 양측의 격차는 약간 더 벌어졌다. 추석 민심이 ‘이회창 대 정몽준’ 양강 구도의 실현 가능성으로 모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한동안 이어졌고, 노 후보는 당내에서 대선후보의 위상이 흔들리는 등 곤욕을 치렀다.
2007년 대선도 따지고 보면 추석의 영향이 컸다. 17대 대선을 1년 2개월 앞둔 2006년 추석(10월 6일) 직전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지율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처음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줄곧 뒤지던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9월 29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24.0%를 기록하며 박 전 대표(22.0%)를 제쳤다. 그해 7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안보위기 상황이 터지자 여성인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추석 연휴엔 ‘대선과 안보’가 주요 화두 중 하나여서 박 전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결국 추석 직후인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까지 하면서 두 사람의 지지율 순위는 고착화됐고, 이 전 시장은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추석 연휴는 국민들이 미디어를 통해 얻은 일방적 정보가 한자리에 모인 일가친척들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일으켜 지역간 세대간 융합을 이뤄내는 흔치 않은 기회”라며 “융합된 정보는 추석 이후 새로운 흐름으로 다시 구성돼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올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선출에 이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등판 및 단일화 전망 등으로 추석밥상 토론이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안 원장의 출마 시점이 추석 민심을 고려한 대선 전략이라고 평가하지만, 정작 민주당도 당 대선후보를 반드시 추석 전에 선출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경선 일정을 잡았다. 박완주 민주당 의원은 “추석 연휴가 민주당으로서는 최대 고비”라며 “추석 후 각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가 단일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수도권 인구의 지방 대이동 이후 부산·경남과 호남의 민심이 어떻게 모아지느냐가 야권 단일화의 핵심”이라며 “부산·경남이 부산 출신인 안철수와 문재인 중 누구를 선택할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이 누구를 선택할지는 추석 연휴가 지나면 어느 정도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박근혜 후보 역시 추석 대이동이 보수층의 폭넓은 결집으로 이어져 2위 후보와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을지도 관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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