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주자들이 자신의 대통령 이미지(PI·presidential identity)를 구축할 ‘대선 슬로건’ 경쟁에 한창이다. 각 캠프의 홍보, 전략 참모들은 ‘쉽게 와 닿으면서도 세련되고 후보의 시대인식을 효과적으로 내보여 국민을 사로잡을 한마디’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지금까지 반향이 가장 크다고 평가되는 슬로건은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여유 있는 삶을 상징한다. 회사원 변모 씨(32)는 “매일 야근에 시달리는 내 모습이 떠올라 슬로건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이 슬로건은 지난해 9월 민주노총 대변인 출신의 손낙구 보좌관이 한 대기업 직원에게서 받은 전화에서 시작됐다. “회사 경쟁력은 어디서나 인정받지만 유럽 기업 직원들의 여유로운 휴가 얘기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졌다”는 내용. 손 보좌관은 “노동시간 단축과 삶의 질 향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젊은이들이 크게 공감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회의 끝에 대외메시지 담당 김계환 비서관이 문구를 만들었다.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겐 다소 한가롭게 들리고 목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출마 선언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등의 키워드를 내세웠다.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함께 가는 지도자란 의미다. “인상적이지 않다”는 지적과 “‘우리’라는 표현이 통합의 메시지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함께 나온다.
문 고문 측은 아직 ‘메인 슬로건’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출마선언문에 슬로건을 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슬로건을 먼저 내고 정책을 채워가기보다 정책을 구체화하면서 그에 맞는 슬로건을 만드는 게 순서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캠프에 선거대책위원장 인선이 완료되는 이달 중순 슬로건을 내놓을 계획이다. ‘노무현의 카피라이터’로 불린 정철 사무국장과 시인이자 민주당 의원인 도종환 캠프 대변인이 주축이 돼 구상하고 있다. 도 대변인은 5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녁이 있는 삶’, 이런 문구를 만들어낸 분이 참 훌륭하다. 정서에 어필하는 캐치프레이즈를 못 만들어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정세균 민주당 상임고문은 ‘빚 없는 사회, 편안한 나라’를 내세웠다. 캠프 관계자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 직면할 것이기에 개인·가계·국가의 부채 극복이 시대과제가 될 것이라는 점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 ‘행복’ ‘미래’ ‘함께’ 등을 키워드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경선 캠프 이름도 ‘국민행복캠프’다. 다만 그동안 강조해온 ‘국민이 행복한 나라’보다 메시지가 또렷하게 각인되는 슬로건을 찾고 있다. 4·11총선 때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100% 대한민국’으로 정한 일을 좋은 예로 꼽는다. ‘1% 대 99%의 대결’을 내세운 민주당을 겨냥한 슬로건이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임태희와 함께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듭시다’를 내세울 예정이다. 이는 청와대를 떠난 후 4개월의 민생탐방에서 얻은 교훈이 바탕이 됐다. 만나는 국민마다 ‘걱정’을 얘기하더라는 것. 11일 출마 선언을 예고한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은 ‘정치의 세대교체’ 등 몇 가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현재의 위기가 정치의 무능에서 비롯됐으니 낡은 리더십을 바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메시지가 유력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김지은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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