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선언 정장선 의원 “금배지 200가지 특권 내려놓기 쉽지 않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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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요금 얼마인지… 출국수속 직접 하려니 난감…
“권력과의 결별 연습 중”

이달 초 경기 평택시 시내버스 정류장. 민주통합당 정장선 의원(54·사진)에게 시내버스는 낯설기만 했다. 이곳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을 12년(3선)이나 했는데도…. 버스 요금을 내야 하는 순간, 버스 요금(1000원)이 헷갈렸다. 잠시 망설이다 점퍼 주머니에 있는 1000원과 동전 몇 개를 넣었다. 서둘러 자리에 앉았지만 왠지 어색하다. ‘왜 차를 두고 왔을까….’ 약속 장소로 가며 살짝 후회도 해봤다.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겠군…. 혼자 생각에 잠긴다.

정치권이 4월 총선의 ‘금배지 고지’를 향해 권력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요즘, 정 의원은 거꾸로 ‘권력 내려놓기’를 연습하고 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장과 민주당 사무총장 등을 거친 그는 지난해 12월 민주당 의원 중 처음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비교적 검소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그이지만 “국회의원직에 따르는 권력과 특권을 하나씩 포기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는 15일 “지난해 12월 이런저런 의전을 받아가며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할 일이 있었는데, 배지를 뗀 뒤에는 공항 이용이 얼마나 고단할지 걱정되더라”고 말했다. 출국수속은 공항 측에서 해주고, 보안검색은 약식으로 받으며, 의전실을 무료 이용했던 ‘특권’과의 작별이 두렵다는 것이다. ‘내려놓기’ 연습을 위해, 지난달 해외에 나갈 땐 직접 수속을 해봤다고 한다. 불출마 선언 후 정진석 전 의원에게 ‘스트레스 덜 받고 출국하는 노하우’를 배워 실천한 것.

[채널A 영상]‘금배지’ 달면 KTX 무료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200여 가지의 특권이 따라붙는다. 세비로 통칭되는 연봉은 1억1300만 원이고 세금으로 운전사를 포함한 보좌진을 6명까지 채용할 수 있다. KTX 등 국유 철도, 선박, 항공기를 대부분 무료로 이용한다. 배지를 떼면 65세부터 매달 120만 원의 지원금도 받는다. 차관급 고위직을 지내고 이번에 출마를 노리는 한 인사는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운전사가 없어지는데 아내가 사라진 것보다 더 허전했다”며 농담 반 진담 반 ‘권력의 달콤한 맛’을 고백하기도 했다.

정 의원의 ‘내려놓기’ 중 가장 고민되는 점은 생계유지다. 그가 지난해 신고한 재산은 3억9800여만 원. 아직 젊어 120만 원의 지원금 대상도 아니다. 별다른 자격증이 없어 친구들이 하는 중소기업에서 사외이사를 맡을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불출마 선언 후 어느 날 평택에서 택시를 탔을 때 “지역 경제가 엉망인데 혼자 폼 잡겠다는 거냐”며 꾸짖는 운전사의 말이 유혹처럼 다가왔다. 고민하다 아내(중학교 교사)에게 “다시 나서볼까”라고 했더니 “이혼하고 출마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탈모 증세로 고생하던 아내는 남편의 불출마 선언 후 증세가 나아졌다고 한다.

정 의원은 ‘권력 내려놓기’ 연습을 마친 뒤 다문화가정 돕기 등 봉사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그가 내려놓은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 궁금해진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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