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물러나겠다”… MB “임기 채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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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총장, 李대통령에 사의… 4일 사퇴 가능성
‘수사권 조정’ 贊174 - 反10 압도적 표차 국회 통과

MB “檢 성숙한 자세 가져달라”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회 세계검찰총장 회의 개회식에 김준규 검찰총장과 함께 들어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의 반발과 관련해 김 총장에게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MB “檢 성숙한 자세 가져달라”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회 세계검찰총장 회의 개회식에 김준규 검찰총장과 함께 들어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의 반발과 관련해 김 총장에게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성숙한 자세를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김준규 검찰총장이 30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회 세계검찰총장회의 개회식에서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이 대통령을 만나 “(검경 수사권 조정)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후배들의 사퇴를 막기 위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총장이 물러날 일이 아니다. 임기를 끝까지 지켜달라”며 사퇴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이 이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의를 밝힌 만큼 4일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대검찰청 검사장들의 사표를 반려하고 검사들의 격앙된 분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길은 김 총장의 사퇴뿐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김 총장도 이날 오후 입장자료를 통해 “합의가 깨지거나 약속이 안 지켜지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사퇴 결심을 내비쳤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선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시하되 모든 수사에 대해 검찰 지휘를 받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여야 의원들의 찬반토론 끝에 표결에 부쳐진 형소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00명 중 찬성 174명, 반대 10명, 기권 16명으로 가결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정부 공포를 거쳐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여야는 지난달 20일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청와대가 중재해 만든 검경 합의안을 토대로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을 ‘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로 바꾸는 개정안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또 ‘검찰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는 196조 3항도 확정했다. 그러나 이후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민주당과 경찰의 반발을 수용해 ‘검찰의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수정 의결했다. 본회의는 이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 檢 줄사표에 싸늘한 정치권… 압도적 가결에 숨죽인 검찰 ▼

표결에 앞서 검찰 출신인 박민식 의원은 “관계부처 장관들, 검찰, 경찰 수장까지 20여 일간 격론을 거쳐 서명한 합의안을 사개특위가 만장일치로 처리했는데 법사위가 바꿨다”며 “형소법 개정안을 부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과 함께 박선영 최병국 김동성 이범관 최경희 조순형 이용희 이영애 심대평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법안에 찬성한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검찰 간부들이 사표를 내는 등 집단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묻어난 셈이다.

압도적인 표차로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선 지검 검사들은 일제히 “안타깝고 허탈하다”며 탄식을 쏟아냈다. 당초 검사들의 집단사표 제출 등 강한 반발이 예상됐던 것과 달리 검찰은 좌절감과 실망감에 휩싸인 채 숨을 죽였다. 한 수도권 지검 소속 검사는 “국회가 개정된 형소법 조항 자체의 부작용에 대해선 따지지 않고 ‘검찰 견제’라는 명분만 내세워 통과시켰다”며 “실망감이 너무 커 오히려 다들 말문을 닫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30일 오전 10시 서울시내 모처에서 김홍일 대검 중앙수사부장 등 대검 검사장 4명과 긴급히 만나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한 아들의 사퇴를 만류했다. 김 총장이 사실상 사의를 내비친 데다 대검 검사장들도 모두 사표를 제출해 또 한 번의 검란(檢亂)이 일어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장관으로서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대검 간부들의 사의 표명은 국민과 검찰 구성원을 불안하게 할 수 있으므로 더는 거론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검도 오전 9시부터 30분간 연구관(평검사) 이상이 모두 참여하는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사태 진화에 나섰다. 박용석 대검 차장은 “이번 사태에 동요하지 말고 현업에 집중하라”고 당부했다. 이날 오전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는 공주지청 검사 2명이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평검사들도 사표를 제출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글을 올렸지만 파문이 확산되자 글을 삭제하기도 했다.

반면 경찰은 “소중한 결실을 얻었다”며 반색하고 있다. 경찰은 명실상부한 수사주체로 인정받은 만큼 수사권 문제 전담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구조 개혁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이날 그동안 수사권 조정 협상 과정에서 핵심 실무를 해왔던 수사구조개혁팀을 수사구조개혁전략기획단으로 한 단계 격상할 방침이다. 총경급이던 기존 팀장 계급을 경무관급으로 올려 단장을 맡게 하고 연구·기획 분야와 협의·조정 분야로 업무를 나눠 총경급 중간 관리자를 두기로 했다.
▼ 몸낮춘 법무부 “국민에 심려끼쳐 대단히 송구” ▼

검사 수사지휘권에 대한 구체적인 사안을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법무부와 검찰은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경찰은 “아직 대통령령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았지만 지루한 싸움은 일단락됐다”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정안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법무부와 검찰 내부에선 “아쉽고 안타깝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러나 외부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집단 사표제출 등 격앙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법무부는 입장자료를 통해 “수사지휘 문제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날 검찰 고위 간부들과 중간 간부들의 집단사표 사태로 파문이 확산된 것을 감안하면 몸을 낮췄다고 볼 수 있다.

김영진 법무부 대변인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어렵게 합의를 이뤄 낸 사안인데 당초의 합의 취지가 구현되지 못한 점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대통령령 제정 과정에서 당초의 합의 정신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대검찰청도 “국가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의 합의가 안 지켜진다면 우리 사회의 어떤 합의가 이행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내놓았지만 압도적인 표 차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된 탓인지 집단 사표 같은 실력행사는 없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날 경찰청 간부들과 가진 회의에서 “수사 주체가 된 것을 권한이 늘었다고 본다면 큰 착각이며 오히려 짊어져야 할 책임이 늘어난 것”이라며 “예전처럼 ‘검찰 가면 더 많이 (수사)해 줄 것’이라는 식의 태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이 자리에서 “수사권 법제화(수사개시권 명문화)는 검찰과 싸워 쟁취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며 “국회 본회의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10명의 뜻이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강도 높은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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