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작전상황 보고 이성호 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장(중장)이 22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진해운소속 컨테이너선 한진텐진호의 구출작전 과정을 보고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1일 한진해운 소속 컨테이너선인 한진텐진호가 피랍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해적들이 작심하고 컨테이너선을 공격 목표로 삼고, 실제 승선까지 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해적 대응전략에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해적들이 컨테이너선에 올라 선원들을 납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컨테이너선은 속도가 빠르고 건현(배가 물속에 잠긴 수면부터 갑판까지의 높이)이 높기 때문에 해적들의 타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도 감독도 속도가 15노트(시속 약 28km) 이하로 상대적으로 느리고 건현도 8m 이하인 벌크선에 집중됐던 것이 사실이다. 보안요원 탑승을 의무화하는 기준도 이 속도와 건현 높이에 맞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한진텐진호 사건을 계기로 컨테이너선을 운영하는 해운업체들의 보안의식이 더욱 강화돼야 하고 정부도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컨테이너선까지 먹잇감으로 삼은 해적들은 어떻게 빠르고 높은 배에 접근할 수 있었을까.
국토해양부의 의뢰로 해적 대응전략을 연구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최재선 연구원은 첫 번째 가능성으로 ‘저속운항’을 꼽았다. 컨테이너선은 평균 22노트(시속 약 41km), 최대 30노트(시속 약 56km) 이상의 빠른 속도로 운항하기 때문에 해적선이 따라잡기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유가가 급등하자 대부분의 해운회사가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컨테이너선에 저속운항을 지시하고 있는 것. 한진텐진호도 해적들의 공격을 받을 당시 19∼20노트로 이동 중이었다.
두 번째는 건현이 낮아졌을 가능성이다. 한진해운은 “6500TEU(1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한진텐진호는 평균 건현이 12m 정도”라고 말했다. 통상 해적들은 건현이 8m 이하인 배들을 타깃으로 한다. 그러나 건현이 10m가 넘는 배도 짐을 많이 실으면 물에 잠기는 부분이 많아져 어렵지 않게 올라탈 수 있다.
해적들의 공격 방식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 소장은 “해적들이 스피드보트 위주의 공격에서 모선(母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격으로 진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피드보트만으로는 높은 컨테이너선에 승선하는 것이 어렵지만 이미 납치한 선박을 개조한 모선을 활용하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벌크선 뿐만 아니라 컨테이너선 역시 선원피난처(시타델)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안전운항 기준보다 빠른 속도와 높은 건현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피랍 위기를 모면한 한진텐진호는 해적들의 불법행위에 대비해 똑같이 생긴 8개의 안전격실 가운데 한 곳을 시타델로 만들어 어느 곳에 선원들이 피해 있는지 알 수 없게 했으며 해적 대피훈련도 충실히 해왔다.
정부 당국자는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이후 해적에 대한 한국의 대응 패러다임이 몸값을 지불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처에서 벗어나 예방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군사작전은 해적을 더욱 악랄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해운업체와 정부 모두 긴장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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