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 폐지… 경찰, 檢지휘 없이 수사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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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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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개특위 사법개혁안 발표

10일 오전 9시 15분. 김준규 검찰총장은 김홍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 간부들을 긴급 소집했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 6인소위원회가 오전 11시 사개특위 구성 이후 1년 1개월 만에 사법제도 개혁 방안을 전격 발표키로 했기 때문. 사개특위로부터 사전에 어떠한 협의 요청도 없었기 때문에 검찰 수뇌부는 허를 찔린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총장은 “공론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입법 추진 내용을 발표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회의는 오후 4시까지 계속됐다. 회의가 끝난 뒤 한찬식 대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중수부 폐지는 대형 부정부패의 파수꾼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으로 이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개혁안인지 심각히 우려한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러나 소위는 “기득권을 가진 법원이나 검찰의 저항이 사법개혁의 장애”라며 “법원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겠다는 소명으로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개혁안을 끝까지 관철시키겠다”고 밝혔다.

○ ‘중수부 폐지안’에 검찰 격분


지난해 하반기부터 ‘스폰서 검사’ 특검 도입과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수사’ 등으로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온 국회와 검찰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검찰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이번 사법제도 개혁안에 대검 중수부 폐지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1981년 설치된 대검 중수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등을 구속하는 등 권력형 비리와 대형 경제범죄를 전문적으로 수사해 온 검찰 내 최고 수사 부서로 꼽혀왔다. 정예 검사와 수사관이 포진한 데다 2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이 직접 지휘함으로써 외풍(外風)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수부가 폐지되면 이런 사건들은 모두 일선 지방검찰청 특수부가 맡아 수사하게 되고, 대형 비리 수사의 노하우를 한꺼번에 잃게 돼 수사력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검찰은 우려하고 있다.

소위는 중수부를 폐지하면서 대신 특별수사청을 대검 산하기구로 설치하되 △판사 검사 검찰수사관의 직무 관련 범죄 △국회 의결로 의뢰한 사건 △검찰시민위원회가 재수사를 의결한 사건을 맡기기로 했다. 특별수사청장은 국회 청문회를 거쳐 임명하고 현직 검사를 파견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검사나 법관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도 모두 이곳에서 수사하게 해 사실상 법조인에 대한 강력한 감찰기구 역할을 맡긴 셈이다. 참여연대는 “수사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제외했는데 이는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검찰 개혁안을 왜곡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 ‘검찰 수사지휘권 제한’에 경찰 환영


개혁안에선 현재 검찰이 운영하는 검찰시민위원회의 역할도 강화하기로 했다. 부정부패 및 사회적 관심 사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면 시민위 의결로 특별수사청에 재수사를 맡기도록 할 계획이다. 이곳에서도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면 재의결을 거쳐 필요한 경우 강제 기소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무력화하는 방안이다.

또 경찰이 검찰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를 시작하고 검찰의 수사 지휘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등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제한키로 했다. 경찰청은 “선진 일류국가에 걸맞은 수사 시스템을 만드는 새로운 전기가 됐다”며 크게 환영했다. 그러나 검찰은 “인권 보장 차원에서 경찰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양형기준법 엄격 시행’에 법원 불만


소위는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려 민사와 형사 분야에 각각 3곳의 재판부를 만들도록 하는 등 사법부 개혁에도 불을 지폈다. 그러나 대법관 수를 늘리는 방안은 앞으로 2, 3년간 대법원 사건 추이를 살펴본 뒤 다음 정부에서 추진하기로 하는 등 검찰보다는 강도가 약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소위의 발표 내용을 미리 파악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인지 대법원은 “사법제도 개혁에 관한 국회 논의 과정에 성실히 참여해 국민들께 신뢰받는 사법제도를 이루도록 노력하겠다”는 짧은 논평만 내놨다.

그러나 소위가 내놓은 방안대로 양형기준법이 제정, 시행되면 대법원의 반발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양형 기준은 법관이 선고할 수 있는 형량 범위를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일정하게 정해두는 것이어서 법관의 재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현재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8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내놓았지만 이는 권고 규정이다.

▼청목회 사건 재판중에 ‘중수부 폐지’ 기습 발표 ▼
법조-학계 “정치권 수사에 대한 국회 반격” 해석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6인 특별소위가 10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대법관 증원(14명→20명)을 골자로 하는 여야 합의안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대검찰청, 대법원은 물론이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조차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법조계와 학계에선 이번 개혁안이 검찰의 정치권 수사를 견제하고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다. 우선 합의안이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된 것부터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현역 의원 6명이 기소된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후원 비리 사건 공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일정도 공개하지 않은 채 ‘쪼개기 후원금’을 합법화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기습 처리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검찰의 정치권 수사에 대한 국회의 반격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배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고 했는데, 왜 하필 각종 정치권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론이 나오느냐”며 “중수부가 검찰총장 직할체제로 운용되는 것은 외압을 막기 위해서이고 일선 검찰청 특별수사부 체제로는 지능화되는 대형 게이트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수부 검사 출신의 정준길 대한변협 대변인은 “사정 수사의 중추인 중수부를 없애면 가장 덕 보는 사람이 누구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검찰 내부의 수사기능 분담 문제는 대통령령에 규정돼 있어 의원들이 이런 문제까지 관여하는 것은 입법권 남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중수부 폐지론은 정치권의 단골 메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일 때 여권이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자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은 “검찰 수사로 피해를 본 사람이 검찰의 권한 약화를 노린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만일 중수부 수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면 내가 먼저 내 목을 치겠다”고 강력히 저항했다. 결국 청와대와 여당은 중수부 5개 과를 3개 과로 축소하는 선에서 타협을 했다. 그러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 수사를 받다 서거하면서 폐지론이 다시 부상했다.

당초 권력형 비리를 독립적으로 수사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문제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판검사의 직무 관련 범죄만을 다루는 대검찰청 소속 ‘특별수사청’으로 축소된 것도 비판에 올랐다. 특별수사청은 권력비리 전담 수사기구가 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데다 결과적으로 의원들이 스스로에겐 방어벽을 쌓은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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