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靑 ‘정동기 충돌’]한나라 “NO 정동기” 사전조율없이 일방통보 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집권 4년차 레임덕 조짐… 수습방안 못찾고 ‘혼돈’속으로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의 거취 문제를 계기로 여권 전체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10일 정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한 것은 심상치 않은 사건이다. 집권 여당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었다. 청와대가 이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나서면서 그동안 잠복해 온 당청 간의 긴장과 갈등이 표면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여당이 선수를 친 이유

친이(친이명박)계의 한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동기 부적격 결정’에 대해 “많은 의원이 안상수 대표가 지금까지 해온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친이계가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 없이 내년 총선과 대선의 승리도 없다”는 스탠스를 취해온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당내 여론이 청와대와 상당한 온도차를 보여 왔다는 방증인 셈이다.

사실 감사원장 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당 저변에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의원들의 성향이나 출신, 지역과 상관없이 정 내정자에 대한 ‘불가 여론’이 번지는 상황에서 이날 지도부의 결정은 일종의 ‘출구전략’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만약 정 내정자의 임명동의안이 여당 의원들의 반란표로 본회의에서 부결될 경우 여권은 걷잡을 수 없는 내분의 소용돌이로 빨려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3년 9월 당시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부결되면서 노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진 전례가 있다.

○당청 갈등의 연원

한나라당의 이날 결정은 직접적으로는 이 대통령의 ‘돌려 막기’식 인사 스타일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지만 사실상 오랜 기간 누적돼 온 갈등 때문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당내에선 경제위기 극복 등 성공적 국정운영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반복돼온 현 정부의 위기 상황이 상당 부분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소통 실패’에 근원이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새 지도부 출범 이후에도 당정청 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당내 불만이 쌓여왔다. 여기에는 효율성과 거리가 먼 ‘여의도 정치’를 불신하는 이 대통령의 시각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 측 기류다.

안상수 대표가 10일 전격적으로 ‘정 내정자 사퇴 촉구’의 총대를 멘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지난해 여러 차례 ‘설화’를 겪은 안 대표로서는 ‘강한 리더’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갈 필요성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분노한 청와대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지도부의 결정을 보고받고 침묵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참모진도 종일 당황하는 분위기였다. 당이 민심을 반영해 인사 내용에 대해 얼마든지 의사표시를 할 수 있지만 사전 교감 없이 ‘대통령의 인사가 잘못됐다’는 결정을 내리고 이를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9시 반경 대통령정무수석실에 당 최고위원회의가 수렴한 의견을 전달했으며 정진석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이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를 마친 직후 이런 전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정 수석은 주말에 원 사무총장을 시내 모처에서 만나 정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문제를 숙의했지만 월요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기 부적격’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힌트는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긴급 수석회의를 열고 장시간 대책을 논의했다. 홍상표 홍보수석비서관이 청와대의 공식 반응을 내놓은 것은 오후 4시 40분경. “책임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이번에 보여준 절차와 방식에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사안의 중대함에 비춰볼 때 매우 짧았지만, 당의 의사표시 방식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를 담았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지만 결국 ‘정동기 카드’는 접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정 내정자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내림에 따라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당청 갈등 이제부터 시작?

정 내정자 사퇴 촉구는 지난해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와는 전혀 다른 프로세스를 밟았다. 김 후보자의 사퇴 당시엔 당이 ‘사퇴 의견’을 사전조율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해 김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이 일방적으로 청와대를 압박한 모양새다. 그만큼 이 대통령의 인사권은 물론 국정주도권 전반에 큰 흠집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이 현 정부의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가속화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란 예측이 팽배하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 건건이 청와대와 각을 세울 경우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하는 사람에게 레임덕은 없다”는 이 대통령의 구상은 헝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여권 일각에선 “자칫 공멸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정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매개로 당청 핵심부가 갈등 봉합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갈수록 이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이 약해지고 당 지도부의 리더십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권이 구심점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등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위크뷰]정동기 내정자 사퇴촉구 外
▲2011년 1월10일 동아뉴스스테이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