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장 찍으러 가느니 민생현장에…” 단체장들 외부행사 절반 ‘싹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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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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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교육청 강정길 부교육감은 교육감 권한대행을 놓은 지 한 달이 됐지만 애국가 가락이 귓가에서 맴도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전임 교육감의 임기 만료로 4개월간 권한대행을 할 때 이런 저런 행사에 불려 다니면서 하루에 많게는 4번씩 애국가를 듣고 불렀기 때문. 그는 “행사가 너무 많아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표를 먹고 사는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고민은 더 크다. 행사 참석 요청에 응하다 보면 정책과 민생 챙기기가 어렵다. 거절하자니 표심이 떠날까 걱정이다. 하지만 민선 5기 들어 “행사 참석을 자제하고 정책과 업적으로 승부하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단체장이 부쩍 늘고 있다.

○ 50%는 ‘안 갈 수 있는 행사’

대전시는 정책 구상을 위해 행사 참석을 줄일 방안을 연구해 보라는 염홍철 시장의 주문에 따라 지난해 실국장 이상 간부의 참석 행사를 분석한 결과 838건 가운데 517건에 시장이 참석했다. 이 중 370건의 참석 사유는 축사, 격려사 등 환영인사였다. 4, 5월과 10, 11월 등 축제가 많은 시기의 행사 참석은 다른 때보다 갑절 이상 많았다.

김의수 대전시 자치행정국장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시장 참석 행사를 국경일, 법정기념일, 대규모 국제 및 전국 행사 등으로 제한했더니 50% 이상 행사 참석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권영세 경북 안동시장도 국경일과 중요도가 높은 상급기관 행사, 모든 시민 대상 행사 등으로 참석 기준을 정했다. 안동시는 이럴 경우 시장이 참석하는 행사를 연간 평균 1300여 건에서 500여 건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 그 시간에 민생 경청, 정책 구상…


허남식 부산시장은 취임식 때 “통상적이고 의례적인 행사 참석은 지양하고 민생현장을 찾아 서민경제를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선언에 그치지 않고 취임식 날 강서구 미음지구 산업단지 조성공사 현장 등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15차례나 현장을 방문했다.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취임 전부터 “안방에 앉아 사진 찍으러 다니는 개념이 아니고 중앙에서 뛰는 도지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더 낮은 곳으로’라는 도정 방향을 정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행사 참석 자제를 공언하지는 않았지만 화성시 매향리 사격장과 화성호 등 도민과의 소통을 위한 현장 방문을 늘려 자연스럽게 의례성 행사 참여를 줄여 나가고 있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의례적이고 의전적 성격의 행사 참석보다는 ‘시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면서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경 시청 회의실에서 ‘시민과의 대화’ 시간을 정례적으로 갖고 있다.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은 농산어촌이 많은 전남지역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행사 참석 대신 중앙부처 방문 일정을 크게 늘리고 있다.

○ 단체장 의지, 시민 협조가 관건

단체장이 불필요한 행사 참석을 줄일 수 있으려면 단체장의 의지와 시민의 협조가 동반돼야 한다.

안동시 관계자는 “시장이 꼭 가야 할 자리가 아닌데도 시장이 와야 행사 품격이 높아진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많다”며 “안동이 고향인 시장이 각종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뒷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시장은 더 큰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연식 강원 태백시장도 취임 직후 관내 118개 기관, 단체에 시장의 행사 참석 요청을 자제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김욱 교수(한국선거학회장)는 “단체장들이 ‘눈도장 찍기’식 행사 참석을 줄일 수 있으려면 단체장과 유권자 의식이 업적 평가 위주로 변화해야 한다”며 “이미 유권자 의식이 그런 방향으로 많이 바뀌고 있어 행사보다 업무를 챙기려는 단체장들의 시도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안동=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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