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수정안 하루만에 작심 비판… 친이 “원래 반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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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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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前대표는 왜?‘설득 불가’ 쐐기로 친박 단속‘정치적인 손해 없다’ 판단한듯

속내 복잡한 與 지도부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과 안상수 원내대표, 정몽준 대표(왼쪽부터)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전날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당내 논란을 보여주듯 당 지도부의 표정이 심각하다. 김경제 기자
속내 복잡한 與 지도부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과 안상수 원내대표, 정몽준 대표(왼쪽부터)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전날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당내 논란을 보여주듯 당 지도부의 표정이 심각하다. 김경제 기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다음 날인 12일 이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분간 직접 반응을 자제할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부가 본격적인 세종시 여론전에 나선 가운데 박 전 대표의 정면 대응으로 당내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 전선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 작심하고 기자들 앞에 섰나?

박 전 대표가 이날 오후 4시경 국회 의원회관 5층 사무실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곧이어 방을 나서던 박 전 대표는 취재진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평소 기자들의 질문에 짧게 대답하던 태도와 달리 작심한 듯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버스운전사가 낭떠러지를 만났다’는 비유를 들면서 정부 측의 대응 논리를 반박하는 등 발언의 수위도 평소보다 높았다.

○ 박근혜 메시지의 포석은?

박 전 대표가 이날 던진 ‘메시지’는 다목적 포석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친이계 등 여권 주류와 친박계 내부를 동시에 겨냥했다는 얘기다.

우선 청와대와 친이계를 향해선 본격화할 여론전을 앞두고 쐐기를 박는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여권 주류가 다음 달 설 연휴를 앞두고 적극적인 여론 조성과 친박계에 대한 설득 작업을 병행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선을 그어놓으려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14일경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회동을 제안할 수 있는 ‘곤란한’ 상황을 미리 차단하고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친이계에 분명히 전한 것이다.

또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은 친박계 의원들에게 ‘원안+알파’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영남권의 한 친박계 중진의원은 “박 전 대표가 친박계 의원들에게 ‘나를 따르라’며 의견 표명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의 말에 따라 친박계 의견이 자연스럽게 모아진다”고 설명했다. 당분간 친박계 내부에서 ‘수정안과의 절충’ 등 ‘딴소리’가 나올 가능성을 서둘러 차단한 것이다.

수도권의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여론에 따라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으로 진단했다. 여론의 풍향에 의해 원안 고수 원칙이 바뀔 가능성에도 쐐기를 박았다는 것이다.

○ ‘여론전쟁’ 승산 있다는 판단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강수엔 앞으로 ‘여론전쟁’에서도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듯하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지지 기반인 영남권에서 세종시 수정안의 역차별 소지에 대한 반발도 박 전 대표를 버티게 하는 동력이다. 수정안 발표 직후 대구지역 의원들은 친박인 서상기 유승민 의원 등의 주도로 수정안 ‘규탄’ 공동성명까지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 측은 충청권 역시 수정 반대 여론이 뒤집힐 여지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혹시 여론이 반전되더라도 국민과의 약속, 원칙과 신뢰를 끝까지 지켰다는 정치적인 명분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완구 전 충남지사는 12일 “박 전 대표는 정치적 성향상 아마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전 지사는 이날 대전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종시 문제는 장기 표류하거나 끝없는 논쟁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반응 삼가는 靑-친이
박근혜 발언 수위-빈도엔 촉각
MB “원안, 다음 대통령에 부담”

청와대는 12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언급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삼갔다. 박 전 대표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다. 청와대는 박 전 대표와의 대립 각이 첨예해질수록 세종시를 둘러싼 구도가 ‘중앙정부 대 충청 민심’이 아닌 ‘이명박 대통령 대 박 전 대표’로 굳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박 전 대표의 이날 언급이 기존 패턴을 벗어나 있다는 데 다소 당황해하는 기류가 감지됐다. 청와대는 당초 박 전 대표가 7일 “당론 반대” 발언을 했기 때문에 당분간 말을 아낄 것으로 내다봤다. 박 전 대표가 그동안 ‘한마디 정치’를 해온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종시와 관련해 발언의 수위와 빈도가 높아지면 본인 또한 역풍을 맞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예상을 깨고 5일 만에 기습적인 강수를 뒀다. 발언의 뼈대는 종전과 달라진 게 없지만 빈도는 의외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선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이 대통령에 대한 공격과 함께 친박계 내부 단속용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친박계 원로인 홍사덕 의원이 최근 중재안을 내놓은 바 있고, 김무성 의원 또한 행보가 예사롭지 않은 만큼 박 전 대표가 자파 의원들을 결속하기 위해 계산된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7일 발언이 본인의 퇴로를 막은 것이라면 이날 발언은 이 대통령의 출구를 막았다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표가 정면 대결을 시사함에 따라 이 대통령으로서도 타협의 접점을 찾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친이 진영도 직접적인 반응을 삼가는 분위기였다. 한 친이 직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의사는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라며 “반대세력에 대한 대응보다는 세종시 수정안 홍보에 집중해 충청권 여론을 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시도지사와 함께한 오찬 간담회에서 “세종시 때문에 다른 지역이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세종시처럼 다른 혁신도시나 기업도시, 지방의 산업단지도 원형지로 (싼값에 토지를) 기업에 공급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또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서) 나의 정치적 이해는 없지만 (바로잡지 않으면) 당장 다음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지 않겠느냐”며 “욕을 먹고 정치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대통령된 사람의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도지사들은 세종시로 인한 다른 지역의 불이익 가능성을 거론하며 중앙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박성효 대전시장은 “세종시로 인해 대전이 축소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고, 정우택 충북지사는 “자족도시 형성을 위해 대단히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몇몇 부분에서 세종시와 충북의 발전방향이 겹친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 하고 있는 사업만을 갖고 ‘내가 하는 것이 맞다’ ‘네가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다퉈서는 미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선거가 다가오니까 지사들이 선거적 발언을 많이 하더라. 여러분은 반은 정치인, 반은 공직자의 관점에서 지역발전도 중요하게 다루고 국가발전에도 기여해야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간담회에는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박준영 전남지사를 뺀 시도지사 15명(충남은 이인화 지사권한대행)이 참석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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