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의장 중재 거부… 자리 박차고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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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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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오 의장 ‘여야 지도부와 동반 사퇴’ 배수진 이후
예산안 처리 압박 초강수에
이강래 ‘직권상정 기류’ 견제

김형오 국회의장(사진)이 27일 내년도 예산안의 연내 처리를 위해 자신과 여야 지도부의 동반 사퇴 카드로 배수진을 쳤다. 여야가 4대강 예산안 처리 문제를 놓고 대치 정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김 의장은 이날 오전 고성학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에게 전격적으로 성명 발표를 지시했다. 여권 지도부와도 사전에 물밑 교감이 없었다고 한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1.2%에 불과한 4대강 살리기 예산 때문에 국회가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예산을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국회의 존재 이유를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김 의장은 이 같은 사태 발생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의장실의 또 다른 관계자는 “최악의 상황이 올 경우 내년을 위해서라도 국회의장단과 여야 지도부를 모두 교체해 정치권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며 “김 의장이 18대 국회의 구태정치를 모두 끌어안고 산화하는 ‘논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배경이야 어찌됐든 김 의장이 던진 승부수로 여야 지도부는 큰 압박을 받게 됐다. 최악의 경우 여론에 떠밀려 동반 사퇴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 의장의 카드는 교착 상태에 빠진 여야의 협상에도 돌파구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산안을 반드시 연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도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는 “김 의장의 성명 발표로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처리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가 김 의장의 중재로 이날 마련된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김 의장이 중재를 하려는 것인지 2 대 1로 강압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기류를 겨냥한 것이다. 특히 예산안의 경우 쟁점법안과 달리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이어서 여당으로선 강행처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작다는 판단도 민주당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연내 처리”의 명분을 뛰어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결국 김 의장의 사퇴 카드가 연내 직권상정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대의명분을 내걸고 강행처리를 시도할 경우 여당 출신인 김 의장이 뒷짐만 지고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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