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1시간뒤 비상사태 선포… 잘 들어보라” 北에 전화통보

  • 입력 2009년 9월 2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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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유신 전후 南北접촉 내막

《북한은 남한의 10월유신 선포(1972년 10월 17일) 이틀 뒤인 19일 오후 5시 평양에 주재하는 공산권 대사들을 외교부로 불러 2시간 동안 남북 간 접촉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를 통해 남측이 북측에 10월유신 발표를 사전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남측이 북측에 전달한 10월유신 선포 배경 설명을 모두 진실로 볼 수는 없으나 당시 남북 간에 흥미로운 접촉이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다음은 평양 주재 불가리아와 동독대사관이 본국에 보고한 외교문서 요약.》

南서 北에 보낸 메시지 - “현 정권서 통일 하려는데 반대세력 많아 새로운 조치”
北이 파악한 南의 정세 - “새마을운동 지주-부패 양산… 박정희, 야당-학생 두려워해”

○ 10월 16일 접촉, 17일 발표 직전 통보

김재봉 북한 외교부 부부장은 “10월 15일 남측에서 16일에 남북 연락대표 접촉을 제안하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말했다.

남측 대표는 16일 판문점에서 북측 대표에게 김영주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위원장(노동당 조직지도부장·김일성의 동생)에게 보내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북측이 7·4남북공동성명 이후 약 3개월 만에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회의에서 “남측이 성명을 이행하지 않고 반공 캠페인을 지속한다”고 비판한 지 4일 만이었다. 김재봉은 준비된 문서를 갖고 이후락이 김영주 앞으로 전달한 메시지를 (대사들에게) 읽어줬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내각 수상이 권력을 갖고 있는 동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을 이룰 것이다. 1970년대가 될 것이다. 지난번 남북조절위원회 회의에서 북측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북측의) 비판적 목소리가 정당하니 우리 측에서 새로운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측 질문: 무슨 조치냐?

남측 응답: 박정희 대통령과 이후락 부장은 통일을 원한다. 그러나 남측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질서가 먼저 구축돼야 한다. 박 대통령은 17일 북한이 주의해서 들어야 할 중요한 선언을 발표할 것이다.”

김재봉은 또 “17일 박정희의 발표가 있기 1시간 전 남측에서 전화 메시지가 왔다”며 “오후 7시에 비상사태를 공표할 것이니 18일 (남북)접촉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 18일 남북접촉 결과 설명

김재봉은 남측 대표가 18일 김영주 앞으로 보낸 이후락 부장의 메시지 내용도 소개했다.

“아시아에서의 상황은 1970년대 들어 급격히 변했다. 특히 미-소 양극체제에 변화가 있었다. 또 미-소-중-일 4강 관계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국가적 과제들을 미국이나 일본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게 됐다. 7·4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남북대화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성명이 공개된 뒤 남한에서 많은 세력이 이에 반대했다. 남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현행 헌법은 (냉전으로) 양극화된 상황에서 만들어져 반공 원칙을 담고 있기 때문에 타협의 기회가 없다. 미국과 일본은 이런 의도에 반대하지만 우리는 남북대화의 목적에 부응하는 체제를 만들 것이다. 이런 헌법 수정 움직임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서 있다.

북측 질문: 왜 전시국가비상사태가 선언됐나. 새로운 체제는 어떤 형태가 되는 것인가?

남측 답변: 우리가 헌법 초안을 만들면 그 어떤 새로운 오해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귀측에서 의문점이 있다면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 현재 남한에는 많은 여론이 있다. 일부는 17일 발표가 남한을 어디로 이끌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 선언이 친공산주의 방향으로 전환해 (북측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국회는 평화적인 남북대화를 보장할 것이다. 헌법 수정을 통한 대화의 법적 근거를 만들 것이다. 헌법 수정은 대화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강화한다는 의미다.”

○ 북한의 남측 정세 평가

김재봉은 남측의 17일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남한 정세에 대한 북측 나름의 평가를 소개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는 남한의 상황에 대해 조사하고 분석했다. 우리 정보에 따르면 7·4공동성명 발표 이후 90명에 이르는 진보인사들이 체포됐다. 반공 캠페인도 여전하다. 남한 경제는 현재 중대한 문제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박정희는 새마을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농민들은 이에 반대한다. 농업개혁은 부패와 수많은 지주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남측 상황은 장제스(蔣介石) 치하의 옛 중국과 유사하다. 사회주의 희망이 남한 주민들 사이에 고조되고 있다. 7·4공동성명 발표까지는 학생운동이 정체된 상황이었다. 7·4공동성명 이후 운동이 되살아나고 있다. 박정희는 야당, 대중, 학생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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