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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24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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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문단이 23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함에 따라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남북 협력의 진전에 관한 메시지”라고만 밝혔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개별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실제 메시지의 분량 자체는 짤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4 용지 3분의 2 분량으로 열 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 인사의 청와대 방문이 현 정부 들어 처음인 데다 최근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가 급변한 만큼 장차 ‘통 큰 제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암시적 문구가 들어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남측 당국자들은 개별 사안보다는 큰 틀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원하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메시지는 첫째 둘째 셋째 식이 아니라 하나의 큰 줄거리로 돼 있지만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김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인사의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이어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합의 정상선언 얘기를 언급했다. 공동선언과 남북합의의 의미가 다소 퇴색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를 비난하는 식이 아니라 다소의 섭섭함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새로 시작해 보자는 취지의 대화 의사를 전하는 것으로 메시지를 끝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남북관계를 특정 계기를 통해 새로 시작하자는 게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대화를 하자는 뉘앙스였다”고 전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메시지 내용을 포함해 이날 접견이 “북측이 생각하고 원했던 남북관계와 우리가 지난 1년 반 동안 지켜온 남북관계의 원칙과 실체가 뭔지 서로 확인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결국 김 위원장은 6·15공동선언과 10·4 남북합의 정상선언의 기조 위에서 전면적인 대화와 협력을 하자는 취지를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엔 ‘경제 지원’ ‘정상회담’ 등의 단어는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큰 틀에서 잘해 보자는 정도의 대화가 있었을 뿐 정상회담 등 새로운 제안이나 현안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현 정부 취임 후 처음으로 북한 고위 관계자가 청와대를 찾은 자리인 만큼 서로 ‘탐색전’을 벌인 것이며 개별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접견에선 북에 나포된 ‘800연안호’ 선원 석방 등 세부 현안도 거론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다만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신(新)한반도 평화구상대로 북핵 문제 등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제거되면 북한에 과감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핵 포기를 위한 결심을 보여준다면 신한반도 평화구상 실현을 위해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태도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축사에서 밝힌 재래식 무기 감축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좋은 모멘텀이다. 북측 조문단이 돌아가 김 위원장을 만난 뒤 조만간 남북 고위 당국자 간 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