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6자회담 무용론 불거지나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북한과 협상해도 계속 원점 회귀… 시간만 낭비”

북한이 북핵 6자회담 거부 선언에 이어 핵실험을 하겠다고까지 위협하자 미국 행정부 내에서 북한에 대한 회의적 기류가 짙어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상원 세출위원회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개연성이 희박해 보인다며 북한에 대한 깊은 회의론을 드러냈다.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에도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이 같은 클린턴 장관의 발언에 대해 로버트 우드 국무부 부대변인은 “북한의 행동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기괴한(erratic) 것”이라며 “북한 의도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을 이끌어낸 데 이어 금융기관 등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합의한 것을 보고 북한이 심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며 북한이 잇단 강경책을 내놓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핵실험까지 하겠다는 북한의 잇단 협박은 그냥 두고 볼 가벼운 사안이 아니라는 현실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북한이 한반도 정세를 또다시 위기로 몰아가는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탓에 미국이 6자회담 대신 북-미 양자 대화로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우드 부대변인이 이날 “궁극적인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6자회담이 현재로서는 최상의 논의기구”라면서도 “더 나은 방안이 있는지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당사국들과 논의하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도 나름대로 6자회담 무용론 확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쿠바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조정위원회 각료급회의가 채택한 문건에는 기존에 포함되던 6자회담 관련 조항이 빠져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일 “(참가국들이) 6자회담이 더는 필요 없게 됐다는 우리(북) 입장에 이해를 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채널로 북한과 협상을 시작해봤자 지난 5년간 이뤄낸 6자회담 합의사항을 무시하고 원점에서 똑같은 협상을 다시 해야 하므로 시간만 연장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핵 없는 세계’를 주창하고 나선 미국이 북한의 2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위협에 굴복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미국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막무가내 식 행동에 미국은 심각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북한이 무슨 행동을 하든 무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