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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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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감경-가중 기준 불명확
일각 “판사재량 더 줄여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4일 확정한 양형기준안은 살인, 뇌물, 성범죄 등을 유형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눈 뒤 적정한 형량 범위를 정하는 방식으로 돼 있다. 최종 형량을 평균보다 무겁게 할지, 가볍게 할지 결정하는 데 고려해야 할 요소인 ‘양형 인자(因子)’와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기준도 함께 제시했다. 형사재판에서 판사의 재량을 줄이는 대신 양형의 객관적인 틀을 만들어 판사에 따라 들쭉날쭉한 ‘고무줄 판결’에 대한 국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 재판 어떻게 달라지나
지금까지 형사사건 피고인의 형량은 법정 형량의 범위 내에서 전적으로 담당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정해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판사가 양형기준에 따라 범죄유형과 형량범위(보통 2∼4년)를 결정한 뒤 정해진 형량범위 안에서 선고하게 된다. 집행유예 여부도 양형위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결정한다. 판사는 이 과정에서 범행 동기, 수법, 적극성 여부, 자백 여부 등의 양형 요인을 따진 뒤 양형기준에 따라 형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판사가 양형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을 내릴 때는 판결문에 그 이유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양형위 관계자는 “앞으로 재판은 양형인자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떻게 입증할지를 따지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 뇌물, 성범죄 등 형량 크게 높아져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인 배임 횡령 뇌물죄에 대한 형량이 크게 높아졌다. 예를 들어 5000만 원 이상 뇌물을 받은 경우 지금까지 법원은 평균적으로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양형기준안은 기본 형량을 5∼7년으로 높였다. 받은 뇌물을 돌려줬거나 이 때문에 직장을 잃고 사회적 명예가 떨어졌다 해도 이를 고려해 형을 낮춰주지 않기로 했다.
성범죄와 상습강도 등의 형량도 무거워졌다. 술을 마시고 피해자의 집에 침입해 강간한 경우 지금까지는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는 항변을 받아들여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본 형량을 4∼6년으로 정해 집행유예 자체가 불가능하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 징역형에 대해서만 선고할 수 있다. 또 술을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성범죄의 형량을 가볍게 해주지 않기로 했다. 상습적으로 강도를 저지르다 붙잡혔거나 2차례 이상 강도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는 기본 6∼10년, 가중하면 8∼12년의 실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 양형인자 객관적 평가 기준 없어
하지만 형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인 양형인자를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평가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여전히 틈새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형인자에 대한 조사를 법원이 해야 하는지, 법무부나 검찰이 주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도 없는 상황이다. 양형위 논의 과정에서 양형인자마다 점수나 등급을 매긴 뒤 이를 더하고 빼 양형을 결정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량범위를 1년 안팎으로 줄여 판사의 재량을 더 줄여야 한다는 의견 역시 채택되지 않아 일부에서는 ‘양형기준 무용론’도 제기된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