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요구 수용땐 개성공단 인건비 한해 4800만달러 더 들어

  • 입력 2009년 4월 23일 02시 58분


개성공단을 빠져나온 차량들이 22일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귀환하고 있다. 전날 개성공단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 당국자 접촉이 이뤄졌다. 파주=박영대 기자
개성공단을 빠져나온 차량들이 22일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귀환하고 있다. 전날 개성공단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 당국자 접촉이 이뤄졌다. 파주=박영대 기자
“中보다 저임금에 정치적 리스크 감수했는데…”

입주예정 기업 상당수 “차라리 사업 접겠다”

북측의 ‘개성공단 특혜 재검토’ 통보 소식을 접한 입주기업들 사이에선 22일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비관론과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긍정론이 엇갈렸다. 남북협의를 지켜본 북한경제 전문가들은 “북측이 재협상 여지를 남겨둔 만큼 양측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임금 올리면 뭐 하러 개성공단 가나?

“개성공단이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딱 두 가지입니다. 임금이 중국의 40% 정도에 불과하고, 근로자의 이직(移職)이 금지돼 있어 안정적인 인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이죠.” 21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사무국에서 긴급회의를 연 입주기업 대표들은 이처럼 말했다. 실제로 개성공단 내 북측 근로자들의 월급은 평균 74달러로 중국 근로자 평균 임금(200달러)의 37% 수준에 그친다. 연간 임금인상률도 5% 이내로 묶여 있다. 이 때문에 한 봉제업체 대표는 중국에 생산설비를 지으려다 개성공단으로 왔다.

하지만 북한의 요구대로 임금을 인상하고 토지사용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면 개성행을 택할 이유가 없어진다. 기업은행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북측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현재 101개 입주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는 한 해 약 48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해 개성공단 입주기업 연간 총매출액(2억5142만 달러)의 19%에 해당한다. 에스제이테크 유창근 대표는 “북한의 요구가 그대로 실현된다면 입주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개성에서 설비를 철수하고 싶어도 이전비용이 많아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후발 입주업체들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선발업체들이 젊은 인력을 이미 선점한 데다 개성 주변지역에서 인력을 더 끌어오려면 기숙사부터 지으라는 북측 요구가 있어서다. 지난해 입주한 신발제조업체 B사 근로자의 평균연령은 48세에 이른다. B사 대표는 “초기 입주기업들은 그래도 흑자를 기록해 어떻게든 개성공단을 유지하자고 하지만 입주 이후 적자만 보고 있는 후발업체들은 폐쇄하자는 의견이 더 많다”고 전했다. B사는 개성공단에 총 60억 원을 투자했으나 계속되는 인력 부족과 통행제한 조치, 글로벌 경제위기 등이 겹치면서 주문이 끊겨 현재 생산을 거의 중단한 상태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 문창섭 회장과 함께 이날 방북했다 먼저 돌아온 대화연료펌프 유동옥 대표는 “총국 관계자가 어제 정부에 보낸 통보문을 직접 확인해 보니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할 의도는 없고 협상 카드로 이용하는 것 같다”며 “남북협의로 합리적 수준의 임금인상안이 마련되면 따를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 입주 예정기업 사업 포기 잇따라

개성공단 용지를 분양받은 100개 입주예정 기업 중에는 사업을 접겠다는 곳이 상당수다. 한국토지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입주예정 기업 5곳에 이어 올해는 4곳이 토지 분양계약을 해지했다. 이들 업체는 분양대금의 10%에 해당하는 계약금을 포기해야 한다.

독일에 본사를 둔 한국프레틀은 지난해 3월 착공식까지 했지만 개성공단 사정이 급변하면서 지난달 착공을 포기했다. 회사 측은 “롤프 프레틀 본사 회장이 통일 독일의 경험을 살려 개성공단 착공식에 직접 참석하는 등 입주에 적극적이었다”며 “하지만 개성공단을 둘러싼 여러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연내 착공이 불투명해졌다”고 덧붙였다.

인천지역 전자업체 C사는 개성공단에 공장까지 준공했지만 입주를 포기했다. C사 대표는 “용지 매입과 공장 건립에 60억 원을 투자해 철수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입주예정 업체 입장에선 빨리 결정이 나오는 것이 좋다”며 “정부도 조속히 방침을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전문가들 “경제적 절충점 찾아야”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북측의 요구가 입주기업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지만 향후 협상에 따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경제안보팀장은 “정부가 이번 기회를 잘 살리면 우리 측이 제시해 온 인력 확충과 통행 보장, 금융 직거래 등을 함께 풀어나가는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공단 폐쇄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북측의 임금인상 요구는 이전부터 있었던 일인 만큼 정부는 어느 선까지 임금인상을 허용할 수 있는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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