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전쟁 갈팡질팡 巨與 ‘잃어버린 석달’

  • 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8분


협상 결과 듣는 한나라 의원들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의 의장석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디어 관계법 처리에 관한 여야 간 막판 합의가 이뤄진 직후 홍준표 원내대표(오른쪽 아래)로부터 협상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훈구 기자
협상 결과 듣는 한나라 의원들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의 의장석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디어 관계법 처리에 관한 여야 간 막판 합의가 이뤄진 직후 홍준표 원내대표(오른쪽 아래)로부터 협상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훈구 기자
“미디어법은 경제 살리기 법” 주장하다 “추후 처리”

결사반대하던 ‘사회적 논의기구’ 1주일 만에 수용

産銀 민영화 관련법 등 주요 경제법안도 뒤로 미뤄

구심력 약해 171명중 116명만 본회의장 앞에 모여

“우리가 왜 171석의 거대 여당을 허락받았는지 도무지 모르는 것 같다.”

2일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분노와 허탈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방침이 여야 대표의 막판 합의로 뒤집힌 직후였다. 그는 “작년 12월부터 3개월 동안 ‘법안전쟁’을 치르면서 정치적 파국은 막았지만 시대적 소명은 잃었다”고 말했다.

이날 협상에서도 한나라당은 그동안 결사반대하던 ‘사회적 논의기구’를 미디어 관계법 처리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체 어느 나라가 국회의원의 본분인 법안심의권을 사회적 논의기구에 맡기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도부는 1주일 만에 이를 덜컥 수용했다.

한나라당은 작년 말 민주당의 국회 불법 점거를 강하게 비난했다. 정작 이번에는 자신들이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을 점거했다. 민주당의 폭력 행사를 막기 위한 사전적 조치였다고 하지만 다수 집권 여당의 행태로 본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 당직자는 “한나라당은 정치력도, 원칙도 없다”며 개탄했다. 그는 “지도부가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기 때문에 원칙을 뒤집으면서까지 무리할 수밖에 없다”고 당 지도부를 겨냥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미디어 관계법이 경제 살리기 법이라고 주장해왔다. 생산유발 효과 3조 원, 고용창출 2만1500명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도 내세웠다. 그러나 2일 새벽 의원총회에서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김형오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잠정 수용한 배경을 설명하며 “미디어 관계법이 경제 관련법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 다음에 처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뒤 말이 맞지 않는 논리다.

정책위 관계자는 “다음에 미디어관계법을 통과시킬 때는 어떤 명분을 내걸어야 하느냐”고 허탈해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실리를 챙긴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은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한 법 가운데 산은법 개정안은 뒤로 미루고 정책금융공사법만 먼저 통과시키기로 했다. 금융공사법은 산은법 처리를 전제로 한다. 경제 관련 법안 한 개를 더 챙겼지만 실제로는 작동이 안 되는 법안을 받은 셈이다. 일을 정교하게 처리했다면 있을 수 없는 전략이다. 한 초선 의원은 “우리가 이런 실적을 갖고 대기업에 투자와 고용 확대를 요구할 수 있겠나”고 말했다.


▲동아닷컴 이철 기자

與 법안심의 고작 1주일

“黨 도무지 긴장감이 없어”

법안 처리 과정을 보면 거대 여당이 소수 야당에 판판이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명해진다. 한나라당은 2월 국회 들어서도 상임위를 20일 전후해 열었다. 하지만 정작 법안 심의 기간은 일주일에 불과했다.

작년 말에도 국회 만료일이 다 돼서야 겨우 주요 쟁점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선 국회의장에게 얼른 직권상정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한 당직자는 “중진들은 장관 자리나 욕심내고 91명이나 되는 초선들은 다음 공천 때문에 말도 못 꺼낸다”며 “당내에서 도무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1일 오후 비장한 각오로 국회 본회의장 앞 점거에 나섰다. 그러나 참석 의원은 전체 171명 중 116명에 그쳤다. 원칙 없이 갈팡질팡하면서 스스로의 힘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것이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의 현주소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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