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장, 관료출신 줄고 민간전문가 늘었다

  • 입력 2008년 8월 29일 03시 07분


■현정부 들어 임명된 121명, 전임자와 비교해보니

대형 공기업 CEO, 기업인 출신 진출 크게 늘어

서울-고-연대 출신 4명 늘고 지방대 12명 감소

정치권 출신 줄었지만 ‘낙하산 인사 논란’ 여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가운데 기업·금융인, 교수, 연구원 등 전문직 출신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관료, 정치인 출신은 이전 정부보다 다소 줄었지만 ‘낙하산 인사’ 논란의 여지는 끊이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경제부는 현 정부가 출범한 올해 2월부터 이달 27일까지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121명과 이들의 전임자로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121명 등 총 242명의 △주요 경력 △정치권 관련 경험 △출신 대학 △출신지 등 주요 프로필을 전수(全數)조사했다.》

정부는 현재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한 305개 공공기관 가운데 폐지됐거나 비상임·당연직을 제외한 294곳의 기관장 선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중 27일까지 121명을 신규 선임하고 83명을 유임하기로 해 전체적으로 70%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나머지 90곳은 선임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 공무원 퇴임후 진로 고민 안겨

새로 임명된 기관장의 주요 출신 경력은 △관료 44명(36.4%) △교수 28명(23.1%) △기업·금융인 13명(10.7%) △연구원 13명(10.7%) △정치인 8명(6.6%) 등의 순이었다.

전임자와 비교해 기업·금융인, 교수, 연구원 등 전문직 출신이 35명(28.9%)에서 54명(44.6%)으로 19명 늘었다.

김쌍수 전 LG전자 고문 등 민간 기업인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주무부처 관료의 낙하산 관행이 다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전력을 비롯해 석유공사 산업은행 도로공사 등 에너지, 금융, 건설 관련 대형 공기업에서 민간 출신의 진출이 눈에 띈다

신임 공공기관장 가운데 관료 출신은 44명(36.4%). 전임 공공기관장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55명(45.5%)이 관료 출신이었던 데 비해 11자리가 줄었다.

이를 반영하듯 정부과천청사 공무원 사이에서는 퇴임 후 진로가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가 돼 앞날을 불안해하는 표정도 역력하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기업형 공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상당수 공익성이 강한 공공기관에서는 민간에서 적임자를 찾기 쉽지 않다. 관련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관료들의 공공기관 진출을 무조건 낙하산으로 몰아갈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출신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SKY’ 3개 대학 비중이 59명(48.8%)에서 63명(52.0%)으로 다소 늘어났다.

지방대는 12개 대학 28명(23.1%)에서 9개 대학 16명(13.2%)으로 축소됐다.

대학별로는 전임자와 비교해 고려대 출신이 7명에서 11명으로 4명, 서울대 출신이 42명에서 43명으로 1명 각각 늘었고 연세대 출신은 10명에서 9명으로 1명 줄었다.

출신 지역은 △영남 53명(43.8%) △호남 20명(16.5%) △서울 등 수도권 29명(24%) △충청 15명(12.4%) △기타 4명(3.3%)으로 노무현 정부 때의 △영남 48명(39.7%) △호남 33명(27.3%) △수도권 19명(15.7%) △충청 15명(12.4%) △기타 6명(5.0%)에 비해 수도권과 영남이 늘고 호남은 줄었다.

영남에서는 이른바 ‘TK(대구 경북)’가 15명에서 26명으로 늘었고 ‘PK(부산 울산 경남)’는 33명에서 27명으로 다소 줄었다.

○ 총선 낙천-낙선 인사 8명 임명

이명박 대통령은 4월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해 “누구에게 주려고 미리 마음먹고, 공모는 형식적으로만 하는 방식이면 안 된다”고 밝혀 ‘낙하산 인사’ 차단을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현 정권도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한 형편. 18대 총선 공천 탈락자나 낙선자, 이 대통령 후보 시절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가 적지 않게 전공과 무관한 기관장 자리를 꿰찬 것.

정계에 발을 들인 적이 있는 인사들은 전체 공공기관장 121명 가운데 24명으로 19.8%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뽑힌 전임 기관장 가운데 30명(24.8%)이 정치 활동 경력이 있었던 것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낙하산 근절’이라는 집권 초기의 의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정치권 경험이 있는 신임 기관장 가운데는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캠프 또는 외곽조직,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인사가 13명(54.2%)으로 가장 많았다. 총선 낙천·낙선 인사들도 8명에 이른다.

김동흔 한국청소년수련원 이사장, 김종태 인천항만공사 사장,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엄홍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이이재 광해관리공단 이사장, 조관일 대한석탄공사 사장, 조춘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은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전용학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총선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공동상임의장을 지냈다.

박천오(행정학) 명지대 교수는 “공공기관의 성격을 나눠 통치 이념과 발맞춰야 할 성격의 기관은 임기 없이 정무직으로 임명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기관은 전문가 위주로 선임해 임기를 보장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민간출신 CEO들 방만조직-비효율 경영 확 바꾼다▼

이전 정부와 비교했을 때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장 인선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민간기업인 출신 기관장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수만 많은 게 아니라 한국전력공사, 한국산업은행 등 규모가 크고 파급력이 큰 곳에 민간 출신 기관장이 다수 선임되면서 공공기관의 체질을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7일 취임한 김쌍수 한전 사장은 한전 사상 첫 민간 최고경영자(CEO) 출신 사장이다. 김 사장은 1969년 럭키금성(현 LG그룹)에 입사해 특유의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LG의 가전부문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그를 2003년 ‘아시아의 스타’로 선정했다.

6월 취임한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를 지낸 금융전문가다. 그동안 산업은행장은 관행적으로 경제부처 출신 고위관료가 임명됐다. 하지만 새 정부는 산은 민영화와 투자은행(IB)으로의 변신을 추진할 적임자로 그를 발탁했다. 민 행장은 취임 직후 해외 기업설명회(IR)에서 민영화 계획을 설명하고 미국의 IB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검토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류철호 전 대우건설 부사장은 6월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대우건설에서 다양한 고속도로 건설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

이 밖에도 27일 취임한 정승일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은 현대건설 발전사업부문장, 삼성물산 플랜트사업본부 전무 등을 지냈고 이달 중순 임명된 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출신이다.

현재 가스공사 사장을 두고서도 주강수 전 현대종합상사 부사장, 이승웅 전 삼성물산 상사부문 대표, 김재우 아주그룹 부회장 등 기업인 출신 인사들이 경합 중이다.

정부는 내부 승진보다는 외부에서 민간 출신 기관장을 수혈해 방만한 조직과 방식을 구조조정하고 경영효율화를 이룬다는 계획이다. 또 전략자원을 취급하는 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은 성공적으로 대형화를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 추진력이 있는 민간 출신 기관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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