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개성공단’…개방으로 한발 더 다가서야

  • 입력 2008년 2월 25일 02시 50분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평화포럼 21’ 전문가 11인의 제언

《개성공단이 손님맞이에 바쁘다. 26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을 취재하러 온 미국 기자 7명이 23일 북측을 통해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청 또는 허락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인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12일)와 중국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지난달 31일)도 이곳을 다녀갔다. 22일에는 고촉통(전 총리) 싱가포르 선임장관이 남측을 통해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그는 23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대화했다. 이 대통령은 고촉통 전 총리와의 면담에서 “개성공단이 좀 더 성공적으로 될 수 있도록 북한이 조금만 더 개방정책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은 한반도와 그 안에 사는 우리들에게 과연 무엇인가. 개성공단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는 지난해부터 분야별 한반도 문제 전문가 11인으로 ‘평화포럼 21’을 구성해 이 문제를 연구해 왔다. 22일 본사 충정로 사옥에서는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내기 위한 마지막 포럼이 열렸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아는 ‘개성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2008년 2월의 개성공단=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북-미 관계의 급진전이 기대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남북의 공존과 갈등을 동시에 상징하는 개성공단이 주목받고 있다. 1단계 330만 m²(100만 평)의 기반시설 조성 공사가 마무리된 개성공단에는 24일 현재 2만4000여 명의 한국인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1단계 본단지 분양이 끝나면서 북한 근로자는 2만3215명으로, 1년 전의 두 배를 넘었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일하는 50여 명을 포함해 남측 사람도 857명이나 상주한다.

1단계 단지에 들어갔거나 들어갈 기업은 총 450여 개사. 이 가운데 시장에 팔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기업은 68개사다. 정부에 따르면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한 2004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공단 전체의 생산액 누계는 2억1300만 달러에 이른다.

최근 개성공단 최대의 수혜자는 김 위원장으로 보인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그는 해외 주요 인사들에게 개성을 보여주며 자신이 평화를 위해, 자본주의를 배우려 노력하고 있음을 선전하고 있다”고 했다.

각종 복지비용을 포함한 노동자 1인당 평균 임금을 월 100달러로 계산하면 이번 달에만 대략 232만1500달러가 그와 인민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셈이다.

▽분단체제 속 갈등과 공존의 용광로=개성공단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도의 ‘정치’가 이뤄져 왔다. 남한 측이 운영하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북한 땅에서 실질적인 행정행위를 하고 있다.

황하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감사는 “위원장을 포함한 50여 명의 직원들은 기업 등록에서 각종 인허가 업무까지 남한의 행정기구와 공단 운영자, 법원 등 세 가지 역할을 한다”며 “남북의 인사들은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며 공존을 위한 새 제도를 창출해 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장 안에서는 남한 경영인들이 북한 근로자들에게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경영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공단 입주 1호 기업인 에스제이테크 유창근 사장은 “2004년 시범단지 입주 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북측 근로자들이 컴퓨터교육장을 이용하려고 일요일에도 일하러 나온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정부도 민간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위험한 도박에 나선 것과 같았다.

“시범단지는 북측과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에서 만들어낸 실험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이강연 현대아산 부사장)

“15개 입주 업체들이 허허벌판인 현장을 보고는 ‘정부가 실패에 대한 보상을 보장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말자’고 결의했습니다. 그러다 돈을 벌겠다는 경영 논리를 버리고 새로운 일에 먼저 뛰어들어 보자는 기업가 정신으로 버텨 왔죠.”(유창근 사장)

▽안보와 경제의 딜레마=북한은 휴전선에서 북쪽으로 5km 거리에 있는 개성을 남한 기업들에 내어주는 군사적 양보를 했다. 일부 군사 시설을 북서쪽으로 10여 km 떨어진 송악산 이북 지역과 개풍군으로 옮긴 것이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은 “임금 등으로 북한에 지급된 현금이 군 경제로 유입될 가능성을 차단할 실효적인 장치를 확보하지 못해 우리도 안보 위험을 감수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보 부담은 남북이 다 지는 것이고 위험을 공유하는 만큼 이로 인해 생기는 기회를 살리는 것이 슬기롭다”며 “개성의 경험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등을 통한 군사적 신뢰 구축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 적자 상태인 입주 기업들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북한이 안보 및 사상 불안을 우려해 만들어 놓은 각종 제도적 장벽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3통(통행, 통신, 통관)의 불편함은 여전하다. 경영진이 직접 직원을 고용하고 임금도 직접 주도록 허용돼야 한다. 유 사장은 “이렇게 해야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배신당한 중소기업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개성을 통일문화특구로=사회 문화적으로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개성공단을 포함한 개성 전체를 우리 민족이 부대끼고 어울리는 마당(場)으로 보고 단순한 경제특구가 아니라 통일문화특구로 조성하자”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개성 관광사업은 금강산 관광보다 싼 가격과 짧은 시간에 북한을 체험할 수 있지만 호텔과 음식점 등 인프라스트럭처가 크게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핵문제 해결 없이는 기회도 오지 않는다”▼

南 과도한 비용부담-北 체제 경직성도 변수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22일 발표문을 통해 개성공단의 미래 비전 네 가지를 제시했다. △북한 경제 개발의 모델 △남북경협의 중심지 △남북경제공동체의 실질적 콘텐츠 △동북아 협력의 중심마당 등이다.

그러나 비전이 달성되려면 개성공단의 강점을 활용해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 반대로 약점이 강점을 상쇄하고 기회가 위협이 되면 비전 달성이 어렵다는 것이 동 팀장의 결론. 그가 말하는 개성공단의 강점은 저렴한 노동력과 지리적 이점이고, 약점은 남측의 과도한 비용 부담과 북한 체제의 경직성 등이다.

강점과 기회가 최선의 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정치 및 남북한 국내정치 변수가 중요하다는 데에 포럼 참가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개성공단이 성공하려면 기업들의 투자환경이 개선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핵 문제가 북―미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수립 등 한반도의 국제환경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2·13 및 10·3합의에 따른 핵 폐기 의무를 이행하는 속도에 맞춰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해 10월 제2차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개성공단 2단지 착공을 북한 핵 폐기 2단계 조치(영변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 및 완전하고 정확한 핵 신고)의 완료 등과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김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개성공단 기업들이 생산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도 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한미 FTA는 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의 진전 등을 조건으로 개성공단을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으로 인정토록 했다.

입주 기업들은 개성공단 2단계가 진행돼야 다양한 후방 공급업체들이 입주할 수 있고 그래야 중국이나 베트남 기업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내부정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이번 연구 작업을 총괄한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개성공단이 성공을 거둘 경우 북측이 임금을 크게 인상하는 등 태도를 바꿀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공약인 ‘나들섬’ 구상과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평화포럼 21 참여자(가나다순)

김상태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연구기획팀장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

유창근 에스제이테크 대표이사

이강연 현대아산 부사장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

황하수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감사

허만섭 한국토지공사 개성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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