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통상업무'인가 '정치개입'인가

  • 입력 2007년 7월 16일 2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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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복 원장 체제 들어 정치중립 원칙을 더욱 엄정히 지키겠다고 강조하던 국가정보원이 또 다시 정치개입 논란에 휘말렸다.

국정원이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후보와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다는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의 의혹 제기로 불거진 논란은 국정원이 이 후보의 처남인 김재정 씨의 부동산 자료를 열람했음을 인정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김재정 씨의 자료 열람을 놓고 국정원은 '정당한 업무수행'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나라당 등에서는 국정원의 권한을 넘어선, 사실상의 '정치사찰'이라고 비판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나라당은 검찰 고발에 이어 국정원장 해임안 제출, 대통령 사과 등을 거론하며 연일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국정원, 부동산비리 조사 권한 있나

국정원은 13일 배포한 중간조사 결과 자료를 통해 부패척결 TF에 소속된 5급 K 씨가 김재정 씨의 부동산 자료를 열람한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공직자의 부동산 비리 조사를 해 오던 K 씨가 관련 첩보를 입수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행자부 자료를 열람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정원의 설명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국정원이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비리까지 조사하는 게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다.

국정원은 보도자료에서 "국가정보원법 제3조 1항 1호에 의거 국정원의 직무범위를 합목적적으로 해석해 제반 정보활동 과정에서 국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패 첩보를 수집·보고할 수 있다"며 부동산 비리 조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법 제3조 1항 1호에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의 수집의 범위를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등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부동산비리는 속해있지 않다.

장윤석 한나라당 인권위원장은 "국정원이 관련 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국민의 개인정보에 무차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안보라는 미명 하에 사실상 인권침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국정원법이 금지한 정치사찰 행위로 야당 후보에 대한 뒷조사이자 법치 행정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최고위원 회의에서 "국정원이 예전 중앙정보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인지 의구심도 갖게 한다"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스스로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국정원 당국자는 "국정원의 모든 직무 내용을 일일이 법률에 열거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비리와 부패의 첩보 수집을 정보기관의 통상적 업무영역으로 보는 게 세계적 추세"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반부패관계기관 협의회 규정에도 국정원장이 배석기관으로 규정돼 있는 것만 보더라도 국정원의 비리, 부패 관련 정보 수집 임무를 인정해 준 것 아니겠느냐"고 반박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부패척결 TF 운영은 포괄적으로 국정원의 직무범위에 들어간다고 봐야할 것"이라며 국정원 입장을 지지한 뒤 "비리 수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비리 첩보를 수집해서 수사기관에 이첩하는 것도 못하게 하면 곤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부패비리 첩보 수집이 국정원의 직무범위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운용과정에서 특정인의 정보가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개연성이 존재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하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국정원, 행정전산망 이용 여부도 논란

김만복 국정원장은 12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국정원에서는 토지, 건물, 세금 등 17개 아이템에 대한 행정전산망과 연동돼 있어 자료 접속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국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국민들의 사생활과 직결되는 각종 사안들을 뒤져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맞물려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장이 밝힌 '연동'의 의미가 '연결'은 아니라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행정전산망과 연결돼 있어 아무 때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필요 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허가를 받아 자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번에 논란이 된 행자부 자료를 비롯한 전자정부망은 애초부터 국정원이 바로 접근할 수 없고 '전자정부법' 등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당국자는 "관련 절차를 무시하거나 업무 목적 외에 정보를 처리하면 전자정부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면서 "엄격한 처리규정을 알고도 사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거나 누설할 직원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주요 행정전산망을 이용할 수 있는 별도 아이디를 가지고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으며 직원이 사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적발·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국정원이 국내 파트에 수시로 구성·해체되는 특별 TF를 운영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명박 TF도 비슷한 성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 당국자는 이에 대해 "내부 조사결과 이명박 TF를 운영한 적은 없었다"고 밝히면서도 이 같은 성격의 특별 TF를 운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조직 운영과 관련된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한편에서는 국정원이 의도야 어찌됐든 관련 업무를 하다 정치권 인사와 관련된 사항을 다루면 정치개입 의혹을 불식시킬 수 없으니 이번 기회에 산업스파이 등 실질적인 보안 사안을 제외하고는 국내 업무를 대폭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산 축적과정이나 부동산 문제에 대한 검증 등 업무는 경찰, 검찰 등 사법기관은 물론 국세청, 행자부, 건교부 등 행정부처도 하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주장의 배경이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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