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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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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최대 슬럼에 가 보니
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 키베라(Kibera) 입구에 도착했다. 키베라는 현지어로 ‘밀림’이라는 뜻. 그러나 취재진을 맞이한 것은 밀림이 아니라 코를 찌르는 악취였다.
| - [반기문총장 아프리카 순방 동행취재]<1>콩고민주공화국 |
| - [반기문총장 아프리카 순방 동행취재]<2>에티오피아 |
시내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5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폭 2m 정도의 좁은 길을 따라 판잣집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 총장도 차에서 내려 걸어 들어갔다.
이곳은 단일 지역으로는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슬럼가. 총면적은 2.5km²로 여의도보다도 훨씬 작으며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센트럴 파크와 크기가 비슷하다. 그러나 이 좁은 지역에 100만 명의 극빈층이 모여 산다.
이곳에는 상하수도도 없다. 야채가게, 미장원, 중고 전자제품 수리점 등 필요한 것은 나름대로 갖추었지만 길 곳곳에 분뇨와 썩은 음식 쓰레기, 파리와 모기가 넘쳐 났다.
반 총장과 취재진이 나타나자 주민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케냐 시골에서 생계가 막막해 수도인 나이로비로 온 유랑자와 인근 국가에서 내전을 피해 온 난민 등 출신 성분은 다양하지만 극도의 가난과 질병에 시달린다는 점은 차이가 없다. 특히 케냐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보균자 220만 명의 20%가 키베라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슬럼가의 희망
WFP는 학생들에게 무료 점심 제공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굶은 아이가 학교에 오면 점심을 무료로 제공한다. 이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9센트(약 90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에게 9센트짜리 점심은 ‘생명선’이다. 대개 이들이 먹는 유일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WFP 나이로비 지부 공보담당자인 페니 퍼거슨 씨는 “부모들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점심을 만드는 데 필요한 땔감을 제공하거나 필요한 일손을 제공하며 이 프로그램에 협조를 잘해 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취학률을 높이는 것도 부수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케냐 정부는 2015년까지 모든 아이에게 초등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날도 한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들이 반 총장이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울타리가 쳐진 공터에 모였다. 척박한 슬럼가에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키베라의 희망’이었다.
한 소녀가 갑자기 취재진에게 “하우 아 유(How are you?)”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그래서 이름을 물었더니 또박또박 “에스더”라고 대답했다. 나이를 물어보자 “나인(Nine)”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동행하던 유엔 관계자에게 물어 보니 “구호단체들이 세운 비정규학교에 다니면서 간단한 영어 인사말을 배운 학생”이라고 설명했다.
취재를 끝내고 입구를 떠나려는 순간 또다시 저만치 에스더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흔들었더니 “굿바이(Good-bye)”라고 다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짧은 만남이었는데도 마음이 통했던지 가슴이 찡했다.
한편 유엔인간거주 정착센터(UN-HABITAT)도 키베라의 주거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 상태다. 조만간 시범 주거단지도 건설될 예정이다.
그러나 수용 인원이 100만 명에 이르는 슬럼가가 결정적인 회생의 전기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넉넉지 않은 케냐 경제 형편에 이들이 먹고살 만한 일자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배고픈 케냐 어린이를 도우려면
한국에서도 굿네이버스(www.goodneighbors.org)가 케냐 어린이 돕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이로비=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새마을운동 어떨까요”
반총장 제안… 직원들 “좋은 아이디어”
케냐 근무 둘째딸 출장중이라 못 만나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해 보는 게 어떨까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1월 31일 열린 한국 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케냐 나이로비에서 유엔 및 산하기관 근무 직원들을 만나 아프리카에서 새마을 운동을 실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그동안 아프리카를 보면서 느낀 점은 외국의 많은 원조에도 불구하고 큰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이 새마을 운동처럼 자조와 협조를 통해 발전하는 방안을 실행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더니 직원들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반 총장은 유엔개발계획(UNDP) 북한 프로그램의 일부 자금이 북한 정부로 전용됐다는 의혹에 대해 “이미 UNDP는 물론 모든 유엔 프로그램에 대한 외부 감사를 권고했다. 한 점 의혹 없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반 총장은 이번 아프리카 순방 과정에서 둘째 딸 현희(31) 씨 부부가 일하고 있는 케냐 나이로비를 방문했지만 부녀간의 만남을 이루지 못했다.
현희 씨 부부는 유엔 산하 유엔아동기금(UNICEF)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현희 씨는 케냐 사무소에서, 남편 시드하스 차터지(인도 출신) 씨는 소말리아 담당 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반 총장은 “며칠 전에 딸이 ‘일 때문에 우간다로 출장을 가게 돼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전화를 걸어 왔다”며 “나는 이런 딸이 자랑스럽다. 유엔은 이처럼 개인적인 일보다는 공적인 일을 우선시하는 조직이다”라고 말했다.
나이로비=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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