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장 ‘만만찮은 신고식’

  • 입력 2007년 1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새 출발을 다짐하며 전용 방탄차량을 물리치고 걸어서 첫 출근을 한 반기문(사진) 유엔 사무총장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공식 업무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된 미국 언론의 ‘견제구’가 다양하고도 쉼 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인 사무총장으로서 첫 업무를 시작한 2일에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 집행 문제가 종일 반 총장을 괴롭혔다.

반 총장은 “후세인의 처형은 각국이 법에 따라 정하는 문제이며, 유엔 회원국은 국제 인권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세인으로 인한 희생자를 잊지 말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주요 미국 언론은 반 총장의 발언을 사형 옹호 의견으로 규정하고 ‘유엔의 방침이 달라진 것이냐’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반 총장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25일 미국 ABC 방송에 출연한 반 총장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불법인지를 묻는 진행자에게 즉답을 하지 않아 “당신은 원하지 않는 답은 안 하는군요. 왜 당신이 ‘미끄러운 뱀장어(slippery eel)’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겠소”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총장 취임선서 후 열린 기자회견도 반 총장을 당혹하게 했다. 한 기자가 강한 캐나다 억양의 프랑스어로 “프랑스어가 왜 유엔에서 통용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고 질문했는데 반 총장이 이 질문을 알아듣지 못해 무슨 말인지 되물은 것. AP통신 등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반 총장이 프랑스어 첫 시험서 낙제(flunked)하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언론에서 나오는 다양한 ‘반 총장 떠보기’는 이라크 문제와 후세인 사형 문제를 유엔에 떠넘기고 싶어 하는 미국과 미국 언론의 태도가 반영된 인상도 없지 않다.

한편으로는 한 국가의 외교사령탑에서 생각과 문화가 다양한 세계를 이끄는 외교사령탑으로 변신하는 통과의례가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