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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1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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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폐기가 먼저’=미국 백악관은 6·25전쟁 종료선언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이 핵무기와 미래의 핵개발 야망을 포기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전쟁종료 선언이 핵 폐기가 완료되는 시점을 염두에 두었는지, 핵 폐기 의사를 밝히는 단계를 상정한 것인지 불명확 하지만 핵 폐기와 관련한 가시적인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9·19 공동성명 1항이 핵 폐기, 2항이 북-미관계 정상화, 3항이 대북 에너지 등 경제지원, 4항이 평화협정 문제 아니냐”고 상기시켰다. 평화협정 문제는 핵 폐기 이후 한참 뒤에야 논의될 수 있는 후순위라는 것.
미국 쪽에서도 “미국 정부는 19일 정상회담 협의과정에서도 평화체제 문제를 중요하게 거론하겠다는 의견을 낸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평화협정 당사자?=평화협정 체결이 ‘남북당사자 원칙’에 의해 남북이 주도적으로 협상하고 정전협정 서명자인 미국과 중국이 보장하는 ‘2+2’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의 생각이다. 반면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997년부터 6차례나 진행된 남-북-미-중 4자 회담이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다뤄왔던 경험이 있고 남북이 일차적 당사자이며 미국과 중국이 정전협정 서명자라는 점에서 4개국이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북한이 오히려 중국을 배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통일연구원 박종철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북한으로서는 중국이 안보문제에 대해 반드시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있어 남-북-미 3자 회담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성렬 전 유엔 주재 차석대사는 2004년 5월 유에스에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에서 군대를 두고 있는 나라들이 영구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중국군은 북한에 주둔하고 있지 않다.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은?=유엔사령부가 6·25전쟁 당시 북한을 침략군으로 규정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구성됐다는 점에서 전쟁이 종결된다면 유엔사의 존재 근거가 없어진다는 견해가 있다. 통일연구원 조민 선임연구위원은 “종전이 선언될 경우 북한은 법적으로 유엔사는 자동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조성렬 기획실장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구성된 유엔군이기 때문에 해체의 경우도 안보리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정전선언에도 불구하고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란 점을 감안해 유엔사가 평화유지군 형태로 존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은 북-미 간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한 억지력으로서 존재했던 주한미군의 지위와 성격도 변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주한미군의 문제는 한미 양자 간에 해결할 문제라며 “평화협정 체결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거론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재획정?=정전협정에 따라 그어진 군사분계선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정식으로 획정하는 문제 역시 민감한 현안으로 대두된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12월 17차 남북장관급 회담 이후 올해 두 차례 열린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백지상태에서 서해상 경계선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어 남북간 경계선 재획정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3월 한 강연에서 “평화협정이 맺어져도 군사분계선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군사분계선 관리는 남북한 군이 유엔군 사령부에서 넘겨받아 남북이 공동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측은 NLL 문제를 단독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논의의 일환으로 다룬다는 방침이다. 1992년에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무기 제거 △단계적 군축 실현 및 검증 등 8대 군사분야 합의사항이 함께 논의할 대상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 “한국전 종료선언” 시각차
“한미 정상의 마음이 만났다(meeting of minds).”(정부 고위 당국자)
“먼 훗날 이야기인 평화협정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워싱턴의 한 소식통)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둘러싼 한미 양국 간 기류가 엇갈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토니 스노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회담 직후 ‘북한의 핵 폐기 시 6·25전쟁의 공식 종료 선언을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회담의 성과를 부각하려 애썼다. 미 정부가 말만이 아닌 ‘적극적인 실천 의지’를 보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20일 기자들에게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자’고 말했고, 평화체제의 다른 표현이 6·25전쟁 종식”이라며 “부시 대통령은 회담 후 ‘굿 미팅’, ‘그레이트 미팅’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평화체제 전환 발언은 곧 재개될 6자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핵 폐기라는 가시적 성과를 끌어내기 위한 여건을 조성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대체적 평가다.
그러나 미 행정부의 기류는 다르다. 워싱턴에서는 스노 대변인의 평화체제 발언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 언론이 스노 대변인의 발언을 주목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먼저 취할 조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화체제 문제는 장기 과제일 뿐이며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상 먼저 핵 폐기를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프놈펜=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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