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NSC “조항 없애도 핵우산 가능” 삭제 고집

  • 입력 2006년 10월 18일 03시 00분


주한미군 포격 훈련17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담터 훈련장에서 실시된 주한미군 포격 훈련에서 주한미군 제2사단 예하 포병대대가 다연장로켓포(MLRS)를 쏘아 올리고 있다. 철원=연합뉴스
주한미군 포격 훈련
17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담터 훈련장에서 실시된 주한미군 포격 훈련에서 주한미군 제2사단 예하 포병대대가 다연장로켓포(MLRS)를 쏘아 올리고 있다. 철원=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를 앞두고 정부 내에선 1978년 제11차 SCM 공동합의문에 처음 들어간 뒤 계속 유지돼 온 미국의 핵우산 제공 조항을 삭제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해 9월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채택될 무렵 북한이 들고 나온 ‘한반도 비핵지대화(nuclear free zone)’였다. 9·19공동성명의 목표인 북한의 핵 폐기는 미국이 남측에 제공하고 있는 핵우산을 걷어내는 게 전제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북한은 당시 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에 합의한 뒤 물밑으로 비핵지대화를 요구한 것이다. 비핵화는 영토 내에 핵은 없지만 핵우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태인 데 반해 비핵지대화는 영토 영공 영해에서 핵무기의 출입과 통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2003년부터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일각에서 SCM 공동합의문의 핵우산 제공 조항을 삭제하거나 표현을 바꾸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지난해 북한의 주장을 계기로 논란이 본격화된 것.

외교통상부와 국방부 등에선 “만일 핵우산 조항을 바꾸면 북한이 한미동맹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인식해 국지전 감행 등의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과의 신뢰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반대했다.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북한에 경도됐다는 미국의 시각이 굳어져 한미동맹의 틈이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핵우산 조항 삭제 찬성론자들은 “조항이 있으나 없으나 미국은 여전히 핵우산을 제공할 테니 문제가 없다. 북한이 9·19공동성명을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밀어붙였다. 찬성론자 중 일부는 “북한이 핵 폐기를 한 뒤 필요하면 핵우산 조항을 다시 집어넣으면 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당시 NSC 관계자는 “핵우산 조항을 삭제하려고 한 게 아니라 핵우산 개념을 유지하면서 조항 내용을 ‘강력한 방위공약’ 등의 문구로 대체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논란 끝에 청와대는 지난해 10월 SCM 개최에 임박해 협상팀에 미국과 핵우산 제공 조항 삭제를 협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협상에서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등 다른 사안에 대한 합의를 마친 뒤 핵우산 제공 조항 삭제 얘기를 처음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미국 정부 당국자가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면서 “그렇다면 공동합의문을 내지 말자”며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것.

이에 청와대와 NSC 측은 “그렇다면 핵우산 조항을 그냥 두는 게 낫다”며 태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는 것은 한미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을 공개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난해 한미 양국이 채택한 SCM 공동합의문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핵우산 제공과 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는 조항이 살아남았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조항삭제 추진됐던 NSC 관계자 군색한 해명▼

정부가 지난해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핵우산’ 조항의 삭제를 추진한 것과 관련해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들의 해명은 ‘핵우산을 벗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대체하겠다’는 차원의 실무 논의였다는 것이다.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북측이 핵폐기에 합의한 마당에 남측이 ‘핵우산’을 계속 쓰고 있다는 표현이 남아 있으면 북측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주장. 당시 핵우산 조항 삭제론자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제공하는 강력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한다’든지 ‘한반도에 대한 핵 위협에 적절한 방안을 제공한다’는 식으로 표현을 고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핵우산이라는 표현의 삭제는 미국이 한미동맹관계에 의해 쌍무적으로 보장해 주는 ‘적극적 안전보장(Positive Security Assurance)’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 또는 위협을 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한다는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항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용산기지의 한강 이남 이전 등 한미동맹의 재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던 때. 북한에 대해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시점에 핵우산 조항까지 삭제할 경우 북한의 오판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세종연구소 이상현 안보연구실장은 “핵우산이라는 문구의 존재 여부가 본질을 변화시키지 않을 수 있을지 몰라도 동맹의 현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며 “공동합의문의 상징성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남주홍 교수도 “핵우산 조항 삭제는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 주자는 것”이라며 “핵무기로 무장한 적 앞에서 스스로 무장 해제를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한발 양보해 당시 NSC 관계자들의 설명대로 핵우산 유지라는 본질은 그대로 둔 채 표현을 ‘순화’해 북한을 적당히 눈속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도 지나치게 순진한 대북 접근이라는 분석이다. 핵우산이라는 글자를 넣지 않더라도 핵우산 보장을 암시적으로 명문화하겠다는 것인데, 그 같은 의도에 북한이 속아 넘어가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성균관대 김태효 교수는 “낙관적인 대북관의 전형적인 예”라며 “정부가 얼마나 북한 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는지를 잘 보여 준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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