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순진한 대북관에 한미동맹만 ‘파경’

  • 입력 2006년 10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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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쌀 지원 보류 10일 울산항 부두에서 트럭 운전사가 대북 지원용 쌀 선적이 보류됐다는 소식을 듣고 적재함에 실린 쌀에 덮개를 씌우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정부는 대북 쌀 지원을 일단 보류했다. 울산=연합뉴스
대북 쌀 지원 보류 10일 울산항 부두에서 트럭 운전사가 대북 지원용 쌀 선적이 보류됐다는 소식을 듣고 적재함에 실린 쌀에 덮개를 씌우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정부는 대북 쌀 지원을 일단 보류했다. 울산=연합뉴스
■ 평화번영정책 왜 실패했나

2003년 2월 25일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 공동번영을 추구해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고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로의 발전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소위 평화번영정책이다.

하지만 정부가 정전체제를 해체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건설하겠다며 추진한 ‘야심 찬 계획’은 9일 북한의 핵실험으로 사실상 총체적 실패로 돌아갔다. 교류와 협력의 강화로 핵무기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정책의 기본목표 역시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다.

한 핏줄을 공존공영의 길로 이끌겠다며 북한에 대한 특수한 접근을 강조한 나머지 50년이 넘도록 지속되어 온 한미동맹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낭만적 대북관의 실패=북한 핵에 대해 정부는 대화와 설득으로 단념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 평화번영정책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평화번영정책은 모든 압력수단을 제외하고 대화만으로 핵문제를 해결한 뒤 남북간 실질협력을 증진시키면 군사적 신뢰 구축도 가능하다는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대북 접근을 취해 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에서 밝혀졌듯 북한에 있어 핵은 체제 생존을 위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정책의 기본전제부터 잘못됐던 셈이다.

이춘근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북한이라는 국가와 김정일 정권이 사는 길은 근본적으로 달랐고 북한은 지속적으로 김정일 정권이 사는 길을 택해 왔다”며 “평화번영정책은 결과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연명책으로 기능해 왔다”고 비판했다.

낭만적인 대북관은 2005년 9월 4차 6자회담의 결과로 채택했던 9·19공동성명에 대한 평가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마침내 북한이 핵 포기라는 전략적인 결단을 내렸다”며 대북 평화번영정책의 개가라고 자축했다.

▽‘악의 축’ vs ‘피를 나눈 동포’=평화번영정책 실패의 또 다른 원인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차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 인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의한 2차 북핵 위기 발생 이후 압박일변도로 북한을 대하는 미국의 정책에 대해 반감을 표시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2004년 9월 “북한의 핵개발 주장은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해 핵 비확산을 최고의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부시 행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한국 정부 내에선 동맹인 미국을 대북정책의 협력자로 보기보다는 평화번영정책 구현의 부담 요인으로 보는 인식이 높아졌다.

실제로 정부는 2003년 이후 유엔에서의 대북 인권결의안 의결 시 기권 또는 불참했으며 위조지폐나 마약 제조 등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잊혀진 ‘동북아 균형자론’=평화번영정책은 한반도에서 동북아시아로 시야를 넓혀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에 일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같은 인식에서 나온 발언이 지난해 3월 8일 공군사관학교에서 밝힌 ‘동북아 균형자론’이다.

당시 정부 고위당국자는 “냉전시대의 낡은 틀인 북-중-러의 ‘북방삼각’과 한-미-일의 ‘남방삼각’의 틀에 더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발언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즉각 한국이 전통적인 한미동맹에서 이탈해 독자노선을 걷거나 친중(親中) 노선으로 급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안보전략연구소 홍관희 소장은 “이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평화번영정책이 얼마나 ‘희망적인 사고(wishful thinking)’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줬던 사례”라고 지적했다.

▽국민적 합의 도출도 실패=노무현 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이 국민의 정부 시절 햇볕정책과 다른 것 중 하나로 ‘국민과 함께하는 대북정책 추진’을 내세웠다. 과거 대북정책 추진 방식과 관련한 논란과 갈등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국민적 공감대와 신뢰를 정책적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것.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오히려 ‘남남갈등’은 더욱 증폭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는 “특정인이 중심이 돼 국민적 합의와 건전한 비판을 무시한 채 독단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해 온 것은 이전 정부에 비해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8년간의 대북 포용정책으로 구축했다는 남북 신뢰관계도 허약하기 그지없다.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항의로 북한에 대한 쌀과 비료 지원을 유보한 정부에 대해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면회소 공사 중단이라는 비인도적 보복으로 맞대응했다.

▽대안=지금이라도 북한이 공존의 파트너이자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양자간에 균형이 갖춰진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공통적인 견해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새로운 대북정책으로서 ‘신햇볕정책’을 주창했다. 신 대표는 “햇볕의 대상은 김정일 정권이 아닌 북한 동포가 되어야 하며, 선공후득(先供後得)이 아닌 철저한 상호주의를, 최우선 정책과제는 남북경협 활성화와 북한의 개혁개방 촉진이 아닌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해결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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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8조…98년이후 쌀-경수로 건설비 등 제공▼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8년 넘게 대북 포용정책을 펴면서 한국에서 북한으로 약 8조 원이 이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진영 의원이 10일 통일부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만든 ‘대북 송금 지원 투자 총정리’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1998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간 돈은 7조9300여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가 북한에 제공한 모든 형태의 지원,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사업에 들어간 투자, 각종 현금 지원이 망라돼 있다. 또 북한 경수로 건설을 위해 제공된 대출금과 발생 이자도 들어 있다.

다만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보낸 불법 대북 송금액 4억5000만 달러는 전체 규모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의 각종 지원 규모는 김대중 정부 시절 1조4915억 원, 현 정부 3조970억 원 등 모두 4조5885억 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는 쌀 차관, 보조금, 인도적 지원 등이 포함된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2000년 대북 지원 규모는 2422억 원으로 전년(563억 원)에 비해 4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2002년에는 직전 연도(1757억 원)에 비해 5배 이상으로 늘어난 9744억 원을 북한에 지원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연간 대북 지원 규모는 1조42억 원으로 1조 원을 처음 넘어섰다.

북한 경수로 건설 명목으로 지원된 돈은 모두 1조77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1999년부터 대출을 받아 지원한 금액은 모두 1조3655억 원. 1999년 자금을 조성한 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매년 3000억 원 이상씩 지원했다. 2004년에는 870억 원으로 급감했고 2005년 227억 원을 끝으로 지원이 중단됐다.

한편 한국 정부의 지원 규모가 늘어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2002년부터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규모는 줄었다. 2002년 감소세로 돌아선 국제사회의 지원은 지난해 1억2064만 달러로 6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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