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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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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유정옥(76) 씨는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유 씨는 6·25전쟁 중 납북된 남편 이봉우(81) 씨를 28∼30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14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주 북한이 갑자기 “남편으로 보이는 이봉우 씨는 자기의 처가 유정옥이 아니라 이정숙(영숙)이라고 말한다”며 재확인을 요구해 왔고 26일 끝내 만남은 취소됐다.
이번 상봉은 56년 만에 최초로 전쟁 중 납북자 당사자와 남측의 가족이 만나는 자리가 될 뻔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유 씨는 8일경 통일부로부터 상봉 대상자로 선정됐다며 상봉 일정까지 통보 받은 뒤 외아들 이상일(57) 씨를 얼싸안고 울고 또 울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습니다. 북으로 끌려가기 전 제가 직장에 찾아가면 남편은 ‘다른 사람이 보면 당신 얼굴 닳으니까 어서 집에 가라’고 할 정도로 금실이 좋았어요.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니….”
상일 씨는 아버지에게 주기 위해 집안 곳곳을 뒤져 아버지 옛 사진과 자신의 성장 과정이 담긴 사진들을 찾았고 앨범을 만들었다. 아버지 옛 직장 동료들을 수소문해 60여 년 전 추억이 담긴 친필 편지도 받았다.
유 씨 모자는 기억을 더듬으며 잃어버린 56년 세월이 눈앞을 스쳐가자 억울함인지 기쁨인지 모를 눈물을 참지 못했다.
경기 수원시의 중앙농업기술원(현 농촌진흥청)에 다니던 아버지는 이 씨가 갓 돌을 지난 1950년 8월 정치보위부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부인과 아들을 외가에 피란 보내고 자신은 직장에 출근한 직후였다.
“열아홉에 시집와 스물한 살에 생과부가 된 어머니는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저 하나만 바라보고 사셨지요. 하지만 전 신원조회에 걸려 육군사관학교 시험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올해 1월 17일 전쟁 중 납북인사 가족의 일원으로 서울중앙지법에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때 “평생소원이 ‘아버지’라고 불러 보는 것”이라던 이 씨였다.
기쁨과 설렘도 잠시. 19일경 통일부로부터 이 꿈을 물거품으로 만든 팩스 1통이 도착했다. 북한에서 아버지의 가족관계를 잘못 확인했다며 재확인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유 씨 모자는 말할 수 없이 실망스러웠지만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가족관계를 더 자세히 써 통일부에 보냈다.
그러나 26일 통일부에서 온 답신은 상봉이 취소됐다는 것. 통일부는 “북한에서 행정 착오였다고 알려 왔다”는 말만 반복했다. 유 씨는 식음을 전폐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가족관계와 주소, 직업까지 확인해 상봉을 약속해 놓고 이제 와서 모든 게 잘못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납북자 가족을 두 번 울리는 북한도 문제지만 일을 이렇게 처리한 정부도 잘한 것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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