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 요청 안해…” 통일부, 발뺌에 막말까지

  • 입력 2006년 5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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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의류업체 신원에벤에셀 공장에서 북측 근로자들이 휴식시간에 운동을 즐기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의류업체 신원에벤에셀 공장에서 북측 근로자들이 휴식시간에 운동을 즐기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3월 31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박모 상무에게 두 사람이 찾아왔다. 김상욱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 건설지원팀장과 윤석종 한국토지공사 분양담당 이사였다. 정부 쪽에서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 핵심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박 상무에 따르면 김 팀장과 윤 이사는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 기업이 대부분 소규모 가공업체인데 남북경협의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기업 입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개성공단 분양 설명회에 많은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전경련이 도와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방문이 있은 뒤 전경련은 다른 경제단체와 함께 열기로 했던 5월 말 공동설명회와 별도로 6월 초 독자적 설명회를 여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런 사실이 11일 본보 보도로 알려지자 통일부는 ‘전경련 방문’의 파문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고경빈(高景彬)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은 기자브리핑을 열고 “통일부 건설지원팀장이 토공 분양담당 이사와 함께 전경련을 방문해 전경련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했으나 단순한 의견 수렴 차원이었지 대기업들의 개성공단 입주를 요청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본보 보도에 대해 “대기업들이 개성공단 입주와 관련해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아니고 기자가 스트레스를 받고 쓴 기사라고 생각한다”는 상식 이하의 ‘막말’까지 했다.

그러나 전경련을 방문했던 실무책임자인 김 팀장은 본보 취재과정에서 “전경련을 방문해 대기업의 개성공단 입주 필요성을 설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팀장은 또 “미국 수출, 북핵, 물류, 노사문제 등으로 대기업들이 개성공단에 대규모 투자를 꺼리고 있지만 개성공단이 남북 경제협력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만큼 대기업과 외국기업의 입주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임원은 “그동안에도 정부가 여러 차례 남북 경협사업과 관련한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물어와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며 “국제협약으로 주요 전략물자를 북한에 반입할 수 없어 시설투자가 힘든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입장을 무시할 수도 없어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 통일부의 해명과는 달리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대기업 고위 임원은 “국내 대기업은 많은 규제를 받고 있어 정부의 뜻을 거스르기 어렵다”면서 “정부 당국자로부터 ‘대기업의 입주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재계는 심리적으로 단순한 협조요청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엄청난 압박을 느끼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경제단체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통일부가 대기업이 회원사인 전경련을 이례적으로 방문해 개성공단 분양 현황과 대기업 입주의 필요성을 설명했으면서도 문제가 불거지자 ‘협조 요청을 한 것은 아니다’고 발뺌하는 것은 유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당초 별도의 분양설명회를 열 계획이 없었던 전경련이 통일부와 토공 담당자가 방문한 후 대기업만을 상대로 한 설명회를 추진한 것을 보면 ‘전경련 방문’을 재계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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