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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4월 1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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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는 이와 관련해 “초청 편지를 받고 고민했다. 그러나 우리가 방북해 ‘사위’라는 사람이 딸의 묘라고 말하면서 안내라도 하면 딸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딸이 죽었다는 것은 절대 믿을 수 없으니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초청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고 한다.
“‘메구미와 저는 ○○마을에서 처음 만나 결혼했고 곧 딸이 태어났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는데, 지금은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어 유감입니다. 딸 혜경이(18)가 아직 어려 일본에 가기는 어려우니 두 분이 북한에 와 주신다면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는 것이었습니다.”(사키에 씨)
이 부부가 방북하지 않은 데는 ‘김철준이 딸의 남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구심도 작용한 듯하다. 부부는 북한이 그동안 딸의 남편이라고 말해 온 김철준이 최근 일본 정부의 DNA 감정 결과 남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진 납북 한국인 김영남(44) 씨와는 동일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을 여전히 갖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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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는 당시 13세의 여중생 메구미가 귀갓길에 홀연히 모습을 감춘 1977년 11월 이후 자신들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뛰어가 “딸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하고 다녀 일본 내에서는 납북 피해자의 상징처럼 돼 있다. 2002년 이후 월평균 10회 이상의 강연회에 참석했을 정도다.
한국에 사는 김영남 씨의 어머니가 “(메구미 부모와)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에 시게루 씨는 “우리는 인척인 셈이니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며 “양가 자녀들의 어릴 적 얘기를 서로 나누며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사키에 씨는 “메구미가 북한 사람과 결혼했으면 일본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상대가 한국인이라니 조금 기분이 편해졌다”며 “손녀딸 혜경도 일본에 오기 쉬워진 셈”이라며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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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5월 초순에라도 가고 싶습니다. 이번에 미국 하원 청문회 증언을 위해 아내가 미국에 가는데 한국의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崔成龍) 대표, 일본의 ‘납북일본인구출을 위한 전국협의회’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부회장도 함께 가니 현지에서 일정 조정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시게루 씨)
사키에 씨는 “미 하원 청문회에서 일본이나 한국의 중고교생을 억지로 끌고 가 결혼시키는 것과 같은 반인권적인 일을 북한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12일 도쿄(東京)와 14, 15일 나가노(長野)에 이어 16일 오후 요코하마(橫濱)에서 강연을 하는 등 최근 들어 더욱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게루 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간 혈소판이 줄어드는 증세로 입원해 몸속의 혈액을 바꿔 넣는 수혈을 여러 차례 받았다. 아직 요양 중이라 미국에는 사키에 씨만 가게 됐다.
노부부의 마음은 주변의 권유와 도움으로 성사된 ‘메구미가 가족과 함께 보낸 13년’이란 제목의 전국 순회 사진전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게루 씨가 찍은 메구미의 성장 과정 사진 70여 점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메구미가 결혼할 때 선물하려고 아기 때부터 찍어왔습니다. 딸은 성격이 밝고 장난이 심한 아이여서 항상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죠.”(시게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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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씨 어머니가 아들의 물건들을 몇 달 지난 뒤 모두 태워 버렸다는 얘길 듣고 정말 공감이 가면서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가 쓰던 물건, 입던 옷을 보면 눈물이 나 보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경입니다.”(사키에 씨)
부부는 한국에서는 납북자 가족이라고 하면 감시의 대상이 되는 이중 피해를 본다는 점을 일깨워 주자 “얼마나 어려웠겠느냐”며 가슴 아파했다.
시게루 씨는 “한국도 이전에는 납치 문제에 냉담했지만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한국의 납치 피해자 가족들과는 이전부터 연대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도 좀 더 다른 자세로 임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가와사키=서영아 특파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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