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인간의 욕구 거스르는 정부

  • 입력 2006년 3월 22일 03시 00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을 한 이종범 선수의 이 한마디가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시대 국민이 뭘 원하는지가 이 말 속에 들어 있다는 생각에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패했어도 사람들이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승부를 떠나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로 출발해 뒤늦게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는 외국으로부터 더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일종의 보상심리를 갖고 있다. 2002년 월드컵과 이번 WBC에서 국민이 열광한 것은 ‘자랑스러운 한국’에 대한 기대가 충족됐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만이 아닐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더 나은 삶, 더 당당한 모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진다.

인간의 욕구를 설명하는 심리학 용어 가운데 ‘결핍 욕구’라는 말이 있다. 의식주(衣食住)처럼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결핍 상태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욕구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핍 욕구에도 낮은 단계, 높은 단계가 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이론에 따르면 자부심에 대한 욕구는 결핍 욕구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속한다. 단순한 생존 욕구를 넘어선 한국 사회는 높은 단계의 욕구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한국은 주택 소유욕과 교육에 대한 열의가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다음에는 이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급속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더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한다. 자녀를 잘 기르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어느 교포에게서 “한국에 부자는 있어도 부자 동네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서울 강남에 부자가 많이 살고 있다지만 주거 수준만을 놓고 보면 외국에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강남구 대치동의 몇몇 아파트가 평당 가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지만 기껏해야 40, 50평형대로 외국 기준으로는 중산층 아파트라는 것이다. 위치가 강남에 있으니까 비쌀 뿐이지 고급 주택은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따지자면 유명한 주상복합아파트 정도가 한국의 부촌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건설교통부가 정해 놓은 ‘최저 주거기준’이라는 게 있다. 부부 침실이 따로 있어야 하고, 만 8세 이상의 아들딸은 침실을 각각 분리해 줘야 하며, 노부모 침실이 따로 있어야 하고, 전용 부엌과 화장실이 확보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정도는 돼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며 정부가 제시한 것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방이 최소한 3, 4개가 필요하므로 아파트 대부분이 최저 기준을 겨우 넘을 뿐이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뛰는 것은 국민의 기대심리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더 넓고 안락하며 주거여건이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욕구를 정책에 반영하지 않은 채 ‘세금 물리기’와 ‘재건축 억제’ 같은 징벌적 억압정책으로 대처하고 있으니 실마리가 풀릴 리 없다.

교육 문제는 기본적으로 공교육 수준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데 반해 수요자의 기대치는 크게 높아지면서 파생된 것이다. 세계화와 경쟁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 수요자들은 수준 높은 교육을 원하고 있고 따라서 교육 수요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 정책은 단순화 획일화로 치닫고 있다. 이런 방향을 전환하지 않는 한 교육 문제 해결은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교육 여건이 집값을 좌우하는 큰 변수가 되는 것은 교육과 주거의 만족도를 동시에 높이는 일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인간의 자연스럽고 정당한 욕구를 거스르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3년 전 민심을 제대로 읽어 정권을 잡았다고 자평해 온 정부가 정말 ‘자랑스러운 한국’을 지향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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