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회장 "대북사업 기로에 선듯" 대국민 편지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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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한 이익보다는 정직한 양심을 선택하겠습니다.”

현정은(玄貞恩·사진) 현대그룹 회장이 대북(對北)사업 수행과정에서의 비리 혐의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부회장을 다시 대표이사직에 복귀시킬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현 회장은 12일 현대그룹 인터넷 홈페이지(www.hyundaigroup.com)에 게재한 ‘국민 여러분께 올리는 글’을 통해 “16년간 대북사업을 보필했던 사람을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물러나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만한 자신감이나 우쭐대는 경박함이 아니라 대북사업의 미래를 위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위를 이용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기업경영인은 자신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기업과 사회에 독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며 “이번 결단은 일일이 언급하기도 싫은 올바르지 못한 비리의 내용들이 개인의 부정함을 떠나 기업 전체의 정직함에 치명적인 결함이 되지 않도록 하는 중대한 결단이었다”고 김 부회장 퇴진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비리를 저지른 경영인의 내부 인사조치가 대북사업 수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만에 하나 국민 여러분께서 비리 경영인의 인사조치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시점에서 저는 비굴한 이익보다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특히 “남북한의 경제협력은 상호 간의 정직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며 사업을 수행하는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저는 대북사업을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는 기로에 선 듯하다”며 “하지만 이것은 저 혼자서 결정할 수만은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어 “지난번 금강산 방문 때 핸드백까지 열어 보이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저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면서 “(남편처럼) 목숨과도 맞바꾼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 모욕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 회장의 이날 발언은 김 부회장의 대표이사직 사퇴 후 북한 측이 가하고 있는 “김 부회장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현대의 대북사업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재계에서는 분석했다.

또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 회장이 김 부회장을 퇴진시켜 대북사업에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에도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회장은 끝으로 “대북사업 결실은 반드시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북한 당국도 우리 현대아산 임직원의 정직한 열정을 믿어 주기 바란다”면서 글을 맺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현대엘리베이터 세무조사▼

국세청이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엘리베이터는 12일 “중부지방국세청에서 이달 1일부터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며 다음 달 7일까지 세무조사를 한다고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국세청에서 올해 세수(稅收)가 많이 부족해 우량 기업 위주로 세무조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대북(對北)사업 비리 의혹과 관련된 세무조사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현대엘리베이터 세무조사는 2000년 4월 이후 5년여 만에 이뤄지는 정기 세무조사”라고 밝혔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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