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현정은회장, 핸드백 좀 열어보시라요”

  • 입력 2005년 9월 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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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북한 금강산 온정각에서 열린 금강산면회소 착공식 직후 북한적십자회 장재언 중앙위원장(오른쪽)이 현정은 회장(왼쪽)에게 예정에 없던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사진 제공 현대아산
지난달 31일 북한 금강산 온정각에서 열린 금강산면회소 착공식 직후 북한적십자회 장재언 중앙위원장(오른쪽)이 현정은 회장(왼쪽)에게 예정에 없던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사진 제공 현대아산
축제의 날.

주인공인 현대그룹 현정은(玄貞恩·50) 회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는 지금 시아버지인 고(故)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과 남편인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 “핸드백 열어보시라요”

지난달 31일 오전 7시 반 북측 출입국사무소. 현 회장은 생각지도 못한 봉변(?)을 당했다.

오전 10시로 예정된 금강산 온정각 면회소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왔지만 북측의 응대는 쌀쌀하기만 했다.

북측은 현 회장에 대해 일반 관광객보다 더 까다로운 입북 심사를 했다. 현대그룹 간부들은 당황했다.

“지금까지 금강산을 지켜낸 사람이 누구인데….”

하지만 누구도 북측의 ‘용납하기 어려운’ 처사를 막을 수 없었다.

북측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현 회장에게 핸드백까지 열라고 요구했다. 수차례 북한을 드나들었지만 처음 있는 일이다. 현 회장을 수행했던 현대아산의 한 임원은 북측의 거부로 아예 북한 땅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인사는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부회장을 내친 데 대한 북한의 앙갚음처럼 보였다”고 귀띔했다.


● 예정에 없던 에쿠스 밀담

금강산 면회소 착공식 행사에서도 현 회장에 대한 북측의 냉대는 계속됐다.

현 회장의 자리는 맨 앞줄 15명 가운데 왼쪽 끝부터 윤만준(尹萬俊) 현대아산 사장, 이지송(李之松) 현대건설 사장에 이어 세 번째에 배치됐다. 대북사업을 하는 현대그룹의 ‘총사령탑’인데도….

발파 행사와 기념 삽질까지 끝낸 현 회장은 숙소인 금강산호텔로 가려고 했으나 북한적십자회 장재언(張在彦) 중앙위원장이 길을 막아섰다.

기자들이 다가가자 두 사람은 현 회장의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200m 떨어진 용천마을 입구까지 갔다. 차 안에서 10여 분 동안 예정에 없던 밀담(密談)이 이어졌다.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뭔가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줬을 뿐이다. 현 회장은 차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 말이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 남편 유골 뿌려진 금강산 신계사 찾아

지난달 31일 밤. 현 회장은 금강산호텔 12층 하늘라운지(스카이라운지)에서 최용묵(崔容默·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등 그룹 주요 간부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을 못하는 그는 얼음 몇 개를 띄운 물잔을 들었다. 참모들은 현 회장이 아랫사람들에게 덕장(德將)보다 더 좋은 복장(福將)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날 오전 현 회장이 겪은 일 때문에 모두 씁쓰레한 분위기였다.

1일 아침. 금강산에는 비가 조금씩 내렸다.

현 회장의 차는 일찍 금강산 신계사로 향했다. 남편의 유해를 뿌린 곳이다.

오전 11시부터 열린 제2온정각 개관식 때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행사장 옆엔 도올 김용옥(金容沃) 씨가 쓴 정몽헌 회장 추모비가 서 있었다.

귀경길에 만난 현대 고위 관계자는 “회사 경영권을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북측의 태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답답해했다.

서울로 향하는 현 회장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실타래처럼 엮여 순탄치만은 않은 대북사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금강산=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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