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활동비 54% 국정원서 썼다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정부와 국회가 사용하는 특수활동비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불법 감청(도청)으로 비판받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다 일부 부처의 특수활동비엔 국정원 예산이 은닉돼 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9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계경(李啓卿)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특수활동비 예산은 1994년 이후 10년간 2.5배 증가했고 전년 대비 증가율도 매년 10% 안팎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예산 증가율 5∼6%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영수증이나 세부 지출명세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특수활동비의 증가 추세는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 19개 부처와 국회가 지난해에 사용한 일반회계 특수활동비는 모두 7136억69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증가율은 18.8%나 됐다.

예산 전문가들은 “국회 결산심사나 감사원 감사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덜 미치기 때문에 자칫 예산집행이 방만하게 이뤄지거나 탈법적으로 사용될 여지도 있다”며 특수활동비 급증세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 지난해 특수활동비 총액 가운데 국정원이 사용한 규모는 3892억9900만 원으로 전체의 54.5%를 차지했다. 국정원은 구체적인 사용 명세에 대해선 “비밀사항이어서 밝힐 수 없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이어 국방부가 국군정보사령부와 국군기무사령부, 북한감청부대인 5679부대의 활동지원 등에 2627억 원을 썼고 경찰청(1089억 원), 대통령 경호실(123억 원), 대통령비서실(106억 원)이 뒤를 이었다.

이 의원은 “무엇보다 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사용 명세를 파악할 수 없는 게 문제”라며 “국정원이 예산을 각 부처의 특수활동비나 예비비에 은닉해 사용한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정부가 명확한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속기록에 따르면 장병완(張秉浣)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은 의원들로부터 5억8800만 원의 정보통신부 특수활동비 사용 명세에 대해 추궁 당하자 “국정원에서 계상된 특수활동비로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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