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일가족 탈북]“정부, 北눈치보며 송환요구 안해”

  • 입력 2005년 6월 2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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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는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면서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국군포로는 왜 한 명도 데려오지 못합니까.”

귀환한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은 포로 귀환에 손을 놓은 정부를 향해 한 맺힌 분노를 토해냈다. 이들은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 넉넉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을 버린 조국=정부는 1960년대까지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군사정전위원회에서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거론했지만 1970년대 이후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6·25전쟁 당시 육군소위였던 조창호 씨가 1994년 10월 귀환하자 국방부 인사국장을 위원장으로 한 ‘포로송환촉구대책회의’를 열었다. 국방부, 통일부, 외교통상부 등 범정부 차원의 ‘국군포로대책위원회’는 1999년 1월에야 설치됐다.

현재 정부는 금강산에 상설 이산가족면회소가 설치되면 국군포로의 가족상봉을 추진하고 국제기구를 통해 국군포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다는 원칙을 세운 상태.

조 씨는 19일 “가장 밑바닥 삶을 살고 있는 국군포로가 아직도 500여 명이나 생존해 있는데 정부가 남의 일처럼 보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 있는 국군포로는 그저 고향땅 한번 밟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다”며 “이들이 고향땅에 묻힐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군포로 귀환을 추진하는 단체의 관계자들은 북한에 아직까지 억류된 생존자는 물론 유해를 돌려받기 위해 북한과 적극적인 협상을 벌이는 미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모두 211구의 미군 유해를 북한으로부터 인도받았다.

정부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국군포로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생존 포로의 귀환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북한이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협상이 더디다”고 밝혔다.

▽사지로 몰린 가족=조 씨에 이어 세 번째로 귀환한 국군포로 장무환(79) 씨는 북한에 두고 온 부인과 5남매 때문에 지금도 다리를 뻗고 자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1998년 10월 귀환한 장 씨는 자신의 가족 모두 어디론가 끌려갔다는 소식을 귀환한 이듬해에 전해 들었다.

그는 19일 “북한에 남은 가족이 나 때문에 엄청난 고초를 겪었을텐데 생사만이라도 정부가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97년 북한에서 영양실조로 숨진 국군포로 백종기(당시 69세) 씨의 맏딸 영숙(49) 씨는 “고향인 경북 청도에 뼈를 묻어 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지난해 4월 아버지 유골을 고향으로 모셨다.

백영숙 씨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기 위해 탈북했으며 이 과정에서 아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고 딸은 행방불명됐다. 국군포로에 무관심한 정부의 도움을 기대하지 못해 자신이 직접 데려오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

백 씨는 “아버지가 피 흘린 대가가 이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섭섭함을 감출 수 없다”며 “더 이상 정부가 직무유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군포로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북한에서 온갖 차별을 받았는데 아버지의 조국에서도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2월 국회와 국방부에 국군포로의 자녀를 지원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서를 냈지만 지금까지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국군포로 얼마나 있나▼


장판선 씨가 입국함에 따라 1994년 10월 조창호(趙昌浩·75) 씨 이후 귀환한 국군포로는 모두 49명으로 늘었다. 지금도 북한에는 죽기 전에 조국 땅을 밟아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국군포로 수백 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군포로 얼마나 있나=지난해 9월 말 현재 정부가 파악한 국군포로 생존자는 538명. 새터민(북한 이탈 주민)과 귀환 국군포로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수여서 실제 북한에 남은 국군포로 생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군사령부는 1953년 8월 유엔에 제출한 ‘휴전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통해 6·25전쟁으로 생긴 국군포로 및 실종자 수를 8만2318명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정전협정 체결 후 북한은 한국군 포로 8343명과 유엔군 포로 5126명 만을 송환했다. 반면 유엔군사령부는 이보다 6배 이상 많은 북한군 포로 7만6119명과 중공군 포로 7139명을 돌려보냈다.

이 때문에 많게는 5만∼8만 명의 국군포로가 아직까지 송환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귀환 국군포로 대우는=정부가 1999년 2월 시행한 ‘국군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귀환 국군포로에게는 포로가 된 날로부터 귀환 때까지 기간에 해당하는 봉급과 퇴직연금을 받는다.

사병은 연금을 받을 수 없지만 이 법률에 따라 입대 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면 하사로 임용된 것으로 보고 하사 4호봉 수준의 보수와 군인연금을 지급한다.

또 귀환 국군포로가 제공하는 정보의 가치에 따라 최고 2억5000만 원까지 특별지원금을 준다. 이와 함께 북한 억류 기간의 행적을 1∼3등급으로 구분해 1등급 32평, 2등급 25평, 3등급 20평 규모의 집을 제공한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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