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선언 5주년]물자교류 ‘파란불’ 신뢰구축 ‘노란불’

  • 입력 2005년 6월 14일 03시 20분


《현재 서울에선 평양으로 택배로 보내는 것, 북한에서 생산된 냄비로 라면 끓여 먹는 것, 방북자가 자동차편으로 1시간 반 만에 북한 개성을 방문하는 것 등이 모두 가능하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평양의 순안공항에서 두 손을 맞잡은 뒤 남북한이 5년간 꾸준히 교류협력을 해온 결과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신뢰의 위기 속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남북관계의 명암을 짚어 본다.》

남북이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있음은 수치로 증명된다. 1999년 5599명, 2000년 7280명이던 방북 인원이 2004년에는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2만6534명으로 늘었다.

남북교역액도 1999년 3억3300만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6억9700만 달러로 늘었다. 2004년 남북 교역규모는 북한 대외 무역액의 19.6%로, 남한은 39%를 차지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교역상대가 됐다.

3대 경협 사업으로 일컬어지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사업도 본궤도에 올랐다.

노무현 대통령(가운데)과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이 13일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 국제학술회의’가 열린 서울 신라호텔에서 회의장으로 가고 있다. 왼쪽은 샤나나 구스망 동티모르 대통령. 석동률 기자

경협과 민간교류를 법적으로 보장한 부분도 눈에 띈다.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상사분쟁조정절차 △청산결제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된 4대 경협합의서가 2003년 8월 발효돼 투자활성화의 물꼬를 텄다.

남북은 또 지난 5년간 총 124번, 연 평균 24번 이상의 각종 대화를 가졌다. 장관급 회담의 경우 2000년 7월 이후 지난해 5월까지 모두 14번 개최됐고 이달 21∼24일엔 15차 회담이 서울에서 열린다.

군사 분야에서도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김근식(金根植) 교수는 “6·25전쟁의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남북 군 당국이 마주앉아 초보적 수준이지만 신뢰구축을 통해 평화공존의 단초를 마련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5년의 숙제는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상회담 당시 양 정상이 서명한 ‘남북공동선언’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돼 있지만 아직까지 답방은 실현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도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6·15공동행사 5주년 기념 학술회의’ 기조연설에서 “유감스러운 것은 김 위원장의 답방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산가족들의 숙원인 상설면회소도 정상회담 2주일 후인 2000년 6월 27일 금강산에서 열린 1차 적십자회담에서 설치에 원론적으로 합의한 뒤 2003년 11월 3일 5차 적십자회담에서 ‘합의서’에 서명까지 했지만 북측은 착공을 미루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정부가 북한에 대한 자극을 우려해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처지이다. 10일(미국 현지 시간)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처음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했을 뿐 한국 정부는 올해 유엔 인권위원회에 상정된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 지난해에 이어 기권했다. 정부는 2003년엔 표결에 불참했었다.

북한의 일방적인 태도 변화로 인해 남북관계에 급제동이 걸리는 것도 문제. 그동안 당국 간 대화는 북한의 입맛에 따라 좌우되다시피 했다. 남북대화의 안정성 확보가 무엇보다 큰 과제가 되고 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5년동안 이산가족 상봉‘눈물’…서해교전‘피눈물’▼

2000년 8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3층 컨벤션홀은 남과 북에서 수십 년간 떨어져 살아온 이산가족들의 상봉으로 눈물바다가 됐다. 6·15남북정상회담은 모두 10차례의 이산가족상봉을 포함해 남북관계에 길이 남을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2000년 9월 15일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선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메인스타디움에 동시 입장해 전 세계에 남북이 하나임을 과시했다. 남북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도 공동 입장했다.

2002년 9월 18일엔 남북의 허리를 잇는 경의선, 동해선 도로와 철도의 연결을 위한 착공식이 열렸다. 2004년 12월 이 도로는 임시 개통됐다. 2004년 12월엔 개성공단에서 처음 생산된 냄비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판매돼 시민들의 밥상에 올랐다.

하지만 밝은 장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2년 6월 남북한 해군은 서해 연평도 부근 해상에서 교전을 벌여 양측에 많은 사상자를 냈다.

또 금강산 개발 등 대북 민간사업을 추진해 왔던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대북송금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투신자살하는 일도 벌어졌다.

북한은 특히 올해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켰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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