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때인 1978년 민주통일당 후보로 천안-아산 지역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나와 1만7000여 표로 10명 가운데 4위를 차지한 뒤 출마 때마다 2, 3위에 그쳤다.
특히 1992년 14대 총선 때는 민주당 후보로 2만8062표를 얻어 39.2%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이던 황명수(黃明秀) 후보에 2000여 표 차로 석패했다.
그의 당선은 6차례의 낙마에 따른 ‘동정론’과 열린우리당의 막판 후보 교체로 인한 어부지리(漁父之利) 때문으로 분석된다. 열린우리당은 공천 과정에서 이명수(李明洙)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를 전략 공천했으나 당적 문제로 이 전 부지사가 중도하차하자 후보자 등록 당일 임좌순(任左淳)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으로 교체했다. 16대 원철희(元喆喜), 17대 복기왕(卜箕旺) 의원의 잇따른 중도하차로 정치 불신이 커진 점도 지역 유권자들이 그의 ‘뚝심’에 손을 들어준 요인이란 분석이다. 이 당선자는 “아산 발전 공약을 차분하게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산=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