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자극할라” 쩔쩔매는 통일부

  • 입력 2005년 4월 29일 03시 32분


코멘트
《통일부의 ‘북한 눈치 보기’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최근 남북 관계에 관해 “쓴소리를 하고 얼굴을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고 말한 것과는 배치되는 행태다. 그 실상을 살펴본다.》

▼탈북자 판문점 견학 계획 “北당국 발끈할수도” 취소▼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은 3월 새터민(북한이탈주민)의 판문점 견학을 추진하다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취소했다.

당초 취지는 새터민에게 남북의 대치 상황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지만 통일부는 새터민이 집단으로 판문점을 견학할 경우 북한 당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고, 만에 하나 이들 중 일부가 휴전선 월선(越線)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 내에서도 “북한에서도 판문점 북측지역이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오는 ‘안보 관광지’가 된 마당에 새터민의 견학을 막는 것은 과민반응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입장을 바꿔보면 북한으로선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지금 평양에선’ 역할극 하고 트집될까 쉬쉬▼

통일부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회담사무국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가 현재의 북핵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고, 대미 대남 전략을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를 북한의 입장에서 분석해 보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가졌다.

남북회담 경험이 많은 대북 전문가들이 김 위원장을 포함한 북측 주요 인사 역할을 맡았고,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등 당국자들은 이를 시종 진지한 자세로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10개월 이상 중단된 남북대화의 재개방안을 강구하려는 절실한 필요에 따라 마련됐지만 통일부는 이 행사가 열리는 것을 공개하지 않았다. 남측 인사가 김 위원장의 역할을 대행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류독감 지원 무산시킨 北 무리한 요구 공개안해▼

북한의 조류독감 방역을 지원하기 위해 22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실무 협의는 북측이 생화학무기를 만들 수 있어 ‘전략물자’로 분류되는 예방백신 제조설비를 요구하는 바람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을 자극할까봐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하지 못했다.

북측은 이 협상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조류독감 실태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70여 가지의 약품과 장비를 지원해 줄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측은 현지조사 및 자세한 상황설명을 요구하는 남측 대표단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지원하려면 그렇게 하고, 조건을 달려면 아예 지원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회담이 합의에 이르기 전에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