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김원일]北주민의 고난을 생각한다

  • 입력 2005년 4월 24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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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모르고 자라 풍족함을 누리는 오늘의 세태를 두고 노년세대의 자탄이 자못 높다.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갖은 수탈을 겪었고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됐다. 광복 후 분단의 비극을 겪었고 이어 터진 6·25전쟁으로 고난을 체험하며 춘궁기를 넘겨야 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압축경제성장시대를 맞자 자식에게만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열심히 일해 살 만한 터전을 마련하고 보니 어느새 뒷전에 밀리는 ‘늙은이’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남한은 경제 선진국에 올라섰고 군사독재를 청산해 민주화를 달성했다.

북한 노년세대는 남한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었다. 평양의 경우 유엔군 비행기의 융단폭격에 시가지가 잿더미로 변했다. 전쟁 3년 동안 노동력의 대부분을 잃었고 수백만 명이 월남해 버려 불철주야 맨손의 총력 투쟁으로 오늘의 평양시를 복구했다. 동유럽이 붕괴된 1980년대 이후 공산권과의 교역이 끊기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북한은 배급량 부족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기 시작했다. 노년기에 들어서도 자기 대는 물론 가족 구성원이 기아 상태로 방치되니 한평생 고난 속에 산 세대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계속되는 ‘굶주림 행렬’▼

필자가 2003년 세미나 참석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사석에서 북측 인사가 말했다. “3년 전까지의 3, 4년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때를 ‘고난의 행군’ 시대라고 말하지요.” 어림잡아 200여만 명의 아사자를 낸 시기가 1990년대 말이었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탈북자 행렬이 줄을 이었다. 영양실조로 뼈만 앙상한 탁아소 어린이의 참상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자 각 나라의 원조가 답지했으나 6자회담이 답보 상태에 이른 최근 식량사정은 다시 악화됐다고 외신이 전한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끌어내려고 더욱 강력한 경제 압박 카드를 들고 나오는 작금이다. 러시아는 미국식 북한 비핵화에 동조하고, 남한 역시 북한의 핵무장은 막아야 하기에 6자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동맹국으로서 그동안 경제적 지원을 해 왔던 중국마저 6자회담의 틀로 나오도록 종용하는데도 북한 정권은 고자세를 굽히지 않는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한다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방침이다. 북한 정권의 ‘선(先) 수교, 후(後) 6자회담’과 미국의 ‘선 6자회담, 후 수교’가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북한 주민은 오늘도 기아를 면하려 거리와 산야를 헤매고 어린이와 노약자는 영양실조와 의약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 정권은 늘 그랬듯 “지도자 동지 아래 똘똘 뭉쳐 선군정치를 통한 강성대국을 건설하자”며 주민을 독려하고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최소한 자기 국민이 배는 곯지 않게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미국과의 자존심 대결에서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일사불란한 체제로 주민을 세뇌해 ‘우리 식대로 살자’며 다그치니 그럴수록 북한 주민의 삶은 더 열악해진다.

6·25전쟁을 경험한 남북한은 공히 통일은 남북이 평화적으로 이뤄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그러자면 남한은 대화 당사자인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방치할 수 없기에 화해와 협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개성공단 건설, 각종 경제 지원, 해마다 수위를 높여 가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상정에 대한 남한의 기권도 그 한 예다.

▼北인권 언제까지 외면할건가▼

참여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인권을 주요 정책으로 결정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과거 군사정권시대의 인권 탄압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에는 간여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외교’를 고수하고 있다. 한민족이라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서 이런 이중 잣대야말로 도의적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통제된 사회에서 억압당하는 북한 인권과 생존권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마땅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독일 순방길에 한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끌려간다면 건전한 남북관계를 기대할 수 없기에 쓴소리를 하고 얼굴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는 발언이 한동안 화제가 됐다. 이 발언이 북한 주민의 인권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천적으로 적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원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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