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핵심, 깊어가는 對日 적대감

  • 입력 2005년 3월 17일 18시 11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당국자들이 한일간 현안에 강경 일변도의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갈등을 물밑에서 외교적으로 풀어갈 대화채널 부재사태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청와대가 주도하는 대일 강경 드라이브는 협상창구인 외교통상부의 운신의 폭을 제약해 유연한 대응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크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16일 사석에서 기자에게 “요즘 일본 사람들이 지나치다. 보자 하니 골목대장 하려고 든다”며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는 일본의 움직임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며 “미국도 현재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급격하게 잡음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이날 기자들에게 “일본 사람들은 반성 안하는 사람”이라며 “(일본은) 시민단체가 성숙하지 못해 반성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당국자도 “일본 전후세대의 부채(負債) 의식 결여가 오늘날 일본의 도덕불감증을 키웠다”며 일본의 태도에 대해 못마땅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사석에서 최근 일본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했다는 얘기가 청와대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강경기류를 확산시키는 요인의 하나다.

정부는 일본이 미일 동맹 강화를 기반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 같은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같은 강경기조는 외교채널을 통한 갈등 해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외교부도 이런 기류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중견 외교관은 “전시(戰時)에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외교인데…”라며 정부의 대응이 자칫 일본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감정적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를 나타냈다.

일본의 거듭되는 잘못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단호하게 대처하되 정부 당국자들은 개인적인 대일감정을 토로하는 것을 가급적 자제하고 외교적 해결을 위한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는 유연성과 냉철함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