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세금의 무게’가 이리 가벼운가

  • 입력 2005년 1월 23일 18시 19분


서구 민주주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세금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과세를 둘러싼 갈등은 자주 혁명이나 반란의 도화선이 됐다.

미국 독립혁명의 직접적 계기는 영국이 7년 전쟁의 전비(戰費) 충당 등을 위해 아메리카 식민지에 각종 세금을 신설한 것이었다. 이어 터진 프랑스 혁명도 농가소득의 약 81%에 달한 세금 및 공과금 부담과 무관하지 않다.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서 세리(稅吏) 경력이 문제가 돼 단두대로 보내졌다.

세금에 피의 냄새가 묻어 있기는 동양도 마찬가지다. 조선 후기 삼정(三政)의 문란은 잇단 민란과 사회해체로 이어졌다. 논어에는 세금을 뜯어가고 백성을 못살게 구는 악질관리를 피해 호랑이가 득실대는 산 속에 사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고 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는 세금의 무게를 너무 경시하는 것 같다. 정부는 이런저런 명분을 들어 세금 올리기에 열을 올린다. 당연히 국민부담은 커진다.

올해부터 부동산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이 면적에서 시가로 바뀌었다. 상당수 주택은 재산세 등 보유세와 등록세 취득세 등 거래세가 함께 오른다. 서울시 분석에 따르면 서울지역 주택 5채 가운데 3채의 올해 재산세가 지난해보다 늘어난다. ‘3주택 중과세 제도’도 강행 쪽으로 결론이 났다.

담배 가격도 올랐다. 인상분 500원 가운데 455.5원이 담배소비세나 국민건강증진기금 등으로 간다. 2500원짜리 에쎄 담배를 하루 한 갑 피우면 세금과 기금으로 연간 56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7∼10인승 차량의 자동차세 역시 인상된다. 지난해 6만5000원이었던 9인승 카니발의 자동차세가 올해는 교육세를 포함해 16만 원을 넘는다. 경유 값은 작년과 비교해 올 7월에는 8.7%, 2007년 7월에는 23.2% 오른다. 조세부담률은 매년 높아져 이미 20%를 넘어섰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세금만 늘어난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물며 그렇게 거둬들인 돈이 쓸데없는 곳에 줄줄 샌다면 더욱 수긍하기 어렵다. 현실은 어떨까.

감사원은 지난해 말 주요 재정투자사업 예산관리실태를 감사해 발표했다. 2000년부터 작년까지 500억 원 이상 사업 중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추진 보류’ 결정이 났는데도 예산이 배정된 것이 34건, 총 12조2955억 원이었다. 하면 안 되는 사업에 12조 원 이상 낭비됐다는 말이다.

몇 년 새 부쩍 늘어난 정부의 이런저런 위원회에도 꼬박꼬박 세금이 들어간다. 이미 ‘시민단체’란 말이 무색해질 만큼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은 단체에 지원되는 예산은 또 어떤가.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기업 활동을 촉진하기는커녕 사사건건 발목만 잡는 일부 행정권력의 운영비도 관료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납세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제 세금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할 때가 됐다. 나랏돈이 제대로 쓰이는지에 대한 감시와 견제도 한층 강화돼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세금의 무게’가 이리 가벼워서는 안 된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