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복지 국민연금운용案 반발]‘홀로서기’ 나섰나

  • 입력 2004년 11월 19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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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장관 속내는…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19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보건진료소 우수사업 사례발표 대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연기금 운용에 관한 경제부처의 구상을 강하게 비판했다.-김경제기자
김근태장관 속내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19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보건진료소 우수사업 사례발표 대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연기금 운용에 관한 경제부처의 구상을 강하게 비판했다.-김경제기자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이 19일 작심한 듯 복지부 홈페이지에 연기금 운용문제를 비판하는 글을 띄워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미묘한 시기에 홈페이지를 통해 ‘대(對)국민 직접호소’라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본의와는 관계없이 정치적 의도를 둘러싸고 분분한 관측이 일고 있다.

▽왜 문제 제기했나=김 장관의 한 핵심측근은 이날 그의 속내를 묻는 질문에 “제발 있는 그대로만 봐 달라”고 주문했다.

실제 김 장관이 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면밀히 살펴보면 ‘전선(戰線)’과 타깃을 매우 한정적으로 설정했다. 문면으로만 보면 연기금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정책을 적극 추진해 온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또 경제 활성화 방안의 핵(核)인 ‘한국형 뉴딜정책’ ‘경기종합투자계획’에 대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전면전을 피해갔다. 의식적으로 항명(抗命)이나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부처의 ‘월권(越權)’에 대한 문제 제기 쪽에만 초점을 맞춘 듯했다.

연기금으로 경기부양? ‘한국판 뉴딜정책’ 추진 논란(POLL)


하지만 김 장관의 이슈 제기 방식 자체가 각료로서의 행동반경을 벗어난 ‘정치적 선택’이란 점에서 계산된 행보란 풀이를 낳고 있다. 한 재선의원은 “‘각료’와 ‘정치인’의 경계선에 서 있는 김 장관이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치밀하고 사려 깊은 성격의 김 장관이 당-정-청이 이미 합의한 사안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이 때문에 국민이 불안해하는 연기금 SOC 투자에 분명한 반대 목소리를 냄으로써 ‘정치인 김근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겠다는 시도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장관이 내년 3월로 예정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겨냥해 당 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노 대통령과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자노선을 모색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는 노 대통령을 의식해 철저하게 몸을 낮추고 있는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과의 차별화로도 볼 수 있다. 최근 김 장관 캠프 내에서도 언제 당으로 복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이 같은 정치적 해석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문제 제기 방식에 대한 비판과 파장=열린우리당의 복지담당 정책조정위원장인 이목희(李穆熙) 의원은 “장관이 당정협의를 통해 이의를 제기해야지 이런 식으로 밖에 나가서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다른 재선의원도 “그동안 정부 내에서 조율을 할 때는 무엇을 하다가 이제 와서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여권 내부의 파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 연기금을 경제 활성화의 ‘시드 머니’로 활용하기 위해 추진 중인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한나라당이 이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금 주무부처 장관의 공개적 반대 표명은 여권의 대오를 흐트러뜨릴 것이 뻔하다. 노 대통령까지 나서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공언해 왔다는 점도 여권의 부담이다.

한편 이 부총리는 이날 정례 기자브리핑에서 “주무장관인 복지부 장관으로서 연금에 대한 안정성 논란이 제기되자 이에 대한 입장을 강하게 표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파문 진화에 주력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김근태장관 일문일답▼

“할 말은 많았는데 그동안 참았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19일 국회 의원회관 내 사무실로 찾아간 기자에게 경제 부처의 일방통행식 연기금 운용 등에 대한 생각을 차분히 밝혔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보건진료소 우수사업 사례발표대회’ 참석차 의원회관을 찾은 김 장관은 처음엔 “인터넷에서 할 말을 다했다”며 인터뷰를 사절했으나 기자의 잇단 질문에 차츰 입을 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부의 연기금 운용에 그렇게 문제가 많나.

“연기금, 특히 국민연금은 국민의 ‘적금통장’ 아니냐. 이를 정부가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사업성 등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주무장관이 할 일이다.”

―오래전부터 문제가 됐는데 왜 이제 의견을 피력했는가.

“정부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부처간 경쟁이 생각보다 심하더라. (이야기가) 잘 안 됐다.”

―연기금 운용 원칙 등에 대해 정부의 사회문화팀장으로서 국무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을 텐데….

“공개적으로 하면 싸움이 될 것 아니냐. 사실 이 사안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참고 있다. 15일 방한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재선 후 예상되는 미국의 일방주의 등에 관해) 강연한 것을 들었다. 부시 통령의 재집권에 대해서도 참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북한 핵 등 한반도 문제에 관한 미국의 태도에 대해서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일 때 연기금에 관한 의견을 피력한 게 부담스럽지 않나.

“이건 정책의 문제다. 주무장관으로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대통령과는 무관하다.”

―김 장관의 발언은 여권이 추진하는 ‘한국형 뉴딜정책’이나 기금관리기본법과는 사실 배치되는데….

“나는 국민연금만을 거론한 것이다. 한국형 뉴딜정책 등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그는 이 대목을 연거푸 강조했다.)

―이번 발언으로 김 장관이 당에 돌아올 채비를 한다는 말이 많다.

“(웃으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당에 전해 달라.”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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