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主敵 개념 폐기 서두를 때 아니다

  • 입력 2004년 11월 1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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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적(主敵)’ 표현의 폐기를 시사하는 장관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주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가 왜 주적개념을 표현했는지 이해되지 않으며 ‘특정국가가 주적’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밝혔다. 어제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 “달라진 남북관계 환경을 생각해서 주적개념은 달라져야 한다”고 가세했다. 이로써 내년 1월 발간될 ‘2004년판 국방백서’에서 주적 용어가 삭제될 것은 거의 분명해졌다.

우선 윤 장관의 말은 발언 주체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은 여전히 위협적이며, 군(軍)은 그런 북한과 최일선에서 직접 맞서는 존재다. 설령 다른 정부 부처가 주적개념의 문제를 제기해도 군은 마지막까지 이를 고수해야 하는 집단인 것이다. 그런 조직의 수장(首長)이 스스로 주적개념의 폐기를 들고 나왔으니 당장 군의 정신무장 태세에 손상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 장관의 말도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정부가 국가안보에 앞서 남북관계를 우선시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 개폐(改廢) 논란 등으로 안보불안 심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태다. 이럴 때 정부 내 외교안보 팀장을 겸하고 있는 정 장관의 말은 공연한 분란만 일으킬 소지가 크다.

근본적으로는 주적개념 폐기에 집착하는 정부의 조급증이 문제다. 그러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어설픈 조급증은 오히려 화(禍)를 부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먼저 할 일은 국민에게 확고한 안보 자신감을 심어 주는 것이라고 본다. 주적개념 폐기 여부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도 그런 토대 위에서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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