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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0월 29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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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국회에 제출한 신문법안에 포함된 언론사 노사 동수의 편집위원회 구성 및 편집규약 의무화 조항에 대해 전문가들이 비판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국언론학회 산하 ‘한국 사회와 언론’ 연구팀(책임자 임상원·林尙源 고려대 명예교수)은 29일 고려대 국제관에서 ‘한국 언론의 편집권과 공론장’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편집권 독립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들은 신문사 안팎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지켜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을 비판했다.
박홍원(朴鴻遠)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발제에서 신문법안 중 편집권 독립 관련 조항의 입안 배경과 논거를 개관했다. 지정 토론자로 나선 이근식(李根植)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남경희(南京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홍성구(洪性九)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영재(崔英宰)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김대영(金大暎)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교수, 이상기(李相起) 한국기자협회장, 구본권(具本權) 한겨레신문 온라인뉴스부장, 허엽(許燁) 동아일보 미디어팀장 등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편집권 독립의 법제화 논란=박홍원 교수는 1960, 70년대에는 편집권 독립이 정치권력 등 외부의 부당한 압력을 막아내는 ‘외적 언론 자유’로 해석됐으나, 1980년대 이후 신문의 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주나 경영진의 부당한 통제에서 벗어나 기자들이 독립적으로 보도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내적 언론자유’로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신문 시장에 대한 개입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며 “그러나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개입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홍성구 교수는 “독립된 언론이 좋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우나 언론에 대한 자본의 압력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가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대영 교수도 “편집권 독립의 법제화에 대해 아직까지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신문법안을 밀어붙인다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온 언론자유를 위한 관행들이 다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편집권은 노조로부터도 독립해야=최영재 교수는 신문사 외부의 압력으로부터의 ‘외적 자유’와 언론 자본으로부터의 ‘내적 자유’는 구별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 경영진이 워터게이트사건 때 정치권력으로부터 편집권을 방어해 낸 예를 들었다.
허엽 팀장도 노사 동수의 편집위원회 구성 조항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노동법으로 해결하려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노조를 중심으로 편집권을 해결하려고 할 때 표현의 자유가 노사 문제로 귀착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남경희 교수는 “언론은 진실 추구라는 공적 책무를 통해 영업 이익을 내는 곳이므로 발행인과 기자의 관계는 대립이 아닌 공존과 조화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집권, 외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이근식 교수는 “현재 한국 언론을 위협하는 것은 내부의 압력이 아니라 국민정서, 여론 혹은 사회 분위기라고 하는 외부의 압력”이라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비판의 자유와 이를 허용하는 관용의 풍토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기 회장은 “정치권력과 시민단체들이 편집권을 위협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자본의 위협이 가장 크다”며 “기본적으로 편집권은 기자들이, 경영권은 경영주가 갖되 법이나 제도로 강제하기보다 자율로 풀어갈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임상원 교수는 “언론 시스템은 정치적 시스템과 같이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통은 정치적 시스템의 문제이고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다. 이것을 언론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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