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국보법 폐지” 발언후 대한민국은 이념적 ‘內戰’

  • 입력 2004년 9월 7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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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 이후 이에 동조하는 듯한 돌출 행동과 양상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6일 재판을 거부했는가 하면 ‘원로교사모임’에 소속된 전직 초중등 교사들은 7일 교사 재직 당시 반공교육을 거부하지 못한 과거를 참회하고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또 민주노총 등 30여개 단체로 구성된 전국민중연대 홈페이지에는 6일 ‘김일성 일가족의 전설집(傳說集)’이 게재돼 인터넷에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이에 맞서 보수단체들도 대응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어 자칫 우리 사회 전체가 ‘이념적 내전(內戰)’ 상태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 산하 전국 16개 지회는 노 대통령 발언 이후 ‘대한민국에는 국가보안법이 있어야 합니다’라는 현수막 수십개를 추가로 전국 곳곳에 내걸었다.

또 이 단체와 재향군인회 이북도민회 등 5개 보수단체는 9일 ‘범국민 구국협의회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국보법 문제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주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심지연(沈之淵)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는 “광복 직후에는 좌익과 우익이 체제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대립을 벌인 반면 지금은 체제 수호를 놓고 대립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보혁(保革) 세력간의 대결을 넘어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국보법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6일 개설한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에 대한 온라인 토론장에는 하루 만에 네티즌 3000여명이 즉석투표에 참여할 정도로 열기를 띠고 있다.

이에 대해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인 박효종(朴孝鍾) 서울대 교수는 “집권세력이 이념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사회가 이에 반응하니 이념전쟁의 성격이 점점 짙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김기정(金基正)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보법 개폐 문제가 정쟁(政爭)의 도구로 이용되는 느낌”이라면서 “자칫 한국이 광복 직후의 냉전시대로 돌아갈까 두렵다”고 말했다.

명지대 법학과 허영(許營) 교수는 “침묵하는 다수가 반기를 들고 움직일 경우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참여연대 이태호(李泰鎬) 정책실장은 “이념을 이유로 처벌당하고 곤욕을 치러 온 광복 이후 60년의 한국사회를 본다면 최근 상황은 오히려 이런 이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과정적 혼란”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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